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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8-3. 경향신문. 쇼비니즘이냐, 쇼비즈니스냐]

우석훈 씀

최근 조정래 선생의 소설 <정글만리>를 읽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이 주인공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실 좀 난감했다. 만약 ‘조정래’라는 작가의 이름이 없다면? 마초 민족주의자의 지나칠 정도로 쇼비니즘적인 경제 해석, 이렇게 얘기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어떻게 내가 감히 조정래에게 마초라고 말하고, 쇼비니즘이라고 말하겠나? 그리고 난 중국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 암, 공산당과 토건이 같이 움직이는 이 복잡한 경제에 대해서, 나는 모르잖아? 그래 그래, 모르는 게 최고야!

그러나 학자로서 내 양심이 이 소설에 걸어놓은 태그는 ‘마초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중국 여성들의 삶을 처리한 조정래식 문학의 방식, 그건 지독하게도 마초적이라고 이해했다. 정답이 있지는 않겠지만, <정글만리>는 돈 좀 번 한국 남성들이 중국에 가서 여자 좀 부른다고 뭐 어때? 그 알리바이를 너무 잘 제공하고 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소설을 부인과 같이 읽고 나서, “어, 나 중국에 공부 좀 하러 가야겠어”, 그렇게 부인한테 말할 수는 없다. 대부분 중국 여성들의 경제적 동기를 묘사하는 조 선생의 방식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마초 소설로 분류한다. 좌파든 우파든, 마초는 마초다.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면 수십조원을 벌 수 있다고 떠들던 사람이 있었다.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의 국제행사 유치는 쇼비니즘 논리로 움직인다. G20 행사를 치른 코엑스는 한국 쇼비니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다. 이곳이 좀 더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상징성을 가질 수 있을까.

G20 회의로 번다고 한 돈, 다 어디 있나

G20, 조정래 선생이 G1이니 G2니, 그렇게 죽어라고 묘사한 G, 바로 그 G20 회의가 코엑스에서 개최됐다. 뭐, 그 회의 한 번 개최한다고 몇 십조원을 번다고 떠들던 사람들도 있었고, 그 회의의 ‘안전한 개최’에 기분 나쁜 그림 하나 걸었다고 실정법 위반으로 잡힌 사람도 생겼다. G20 회의를 반대하면 민족의 반역자고, 그 회의에서 수십조원을 우리가 벌겠다고 ‘뻥’을 깐 기관도 있다. 불과 몇 달 후,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G20으로 번다고 한 돈, 다 어디갔어? 왜 우리가 지금 경제위기 중이야?

편안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경향신문 읽는 독자 여러분들을 존경하며, 간단한 얘기를 풀어볼까 한다.

먼저 아나키즘 얘기다. 간단한 질문들 좀 던져보자. 한국의 우파는 민족주의자일까? 일반적으로 다른 국가들의 우파는 민족주의자들이다. 일본, 중국, 대만 그리고 유럽 대부분 국가들의 보수는 ‘영광과 번영(glory and prosper)’이라고 얘기하는 국민경제의 지지자들이다. 이거야 상식이고. 프랑스에서 미테랑 집권 2기, 겨우겨우 총리 등 내각을 찾아온 프랑스 보수주의자들이 제일 먼저 시행한 정책이 불어 강화책이다.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에서 프랑스어 노래를 더 틀어야 한다는 거였다. 파스쿠아라는 내무부 장관이 추진한 정책이다. 이건 누가 봐도 보수주의 정책이다. 동의?

우리의 경우는 동일한 기간 중에 중등교육에 있던 영어교육을 초등교육으로 밀어 넣었고, 좌파든 우파든, 그냥 영어를 더 시키는 것으로 학교 교육을 끌고 갔다. 민족주의자는 좌에도 없고 우에도 없었다.

해석을 해보자. 한국에 민족주의자는 없고, 민족을 핑계로 한 쇼비니스트들만 많다고 하면 이 현상의 설명이 쉽다. 축구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유럽의 광팬들? 그들은 보통 훌리건이라 불리고 인종주의자라는 의심을 받는다. 국가, 민족, 여기까지는 참아주는데 인종주의, 그건 잘 참아주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는?

부산 아시안게임은 대표적인 적자 행사였다. 그때 남은 시설물을 부산은 지금도 어떻게 처리할지, 정확한 방향을 못 잡고 표류하는 중이다. 부산만 뭐라고 할 것은 아니다. 한국의 쇼비니스트들은 국제행사의 최고 중 최고라고 할 법한 88올림픽, 그 상징 중의 상징인 잠실체육관의 활용 방법도 아직 못 찾고 있다. 그냥 송파구니까 쇼핑몰로 바꾸자는 게 시장 시절 이명박의 방안이었다. 그래도 그건 좀 아니다. 문화적 의미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경기장으로서 살려보자, 그런 게 나 같은 시민사회 쪽 인사가 했던 길고 긴 논쟁의 한 축이다. 88올림픽의 상징적 의미를 엄청나게 주장하지만, 그 건물들을 살릴 수 없다는 것, 그 얘기를 같이 하지 않을 수 없다.

참 웃기지 않은가? 나는 원래 쇼비니즘 스타일의 대규모 경기를 반대하던 사람인데 88올림픽 주경기장의 활용 방안을 놓고서 입장이 바뀌었던 이 현실이? 하여간 88올림픽을 찬성했던 사람들이 반대보다 많았을 것 같다. 대학 시절의 나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찬성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내가 88올림픽 주경기장을 일단 살려놓자고 주장하고, 서울시 공무원을 비롯해 주류 경제학자들은 거기에 쇼핑몰을 만들자고 논쟁하던 그 상황이 아주 이상해 보인다.

G20이 열린 바로 그 건물, DJ 시절 컨벤션 산업을 얘기하던 사람들이 이걸로 나라 먹고살 수 있다고 했던 시설물이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그리고 여수 세계박람회까지 다 같은 논리로 무조건 하자고 했다. 별의별 논리가 막 붙었지만, 그 논리들은 기본적으로는 쇼비니즘이다. 경제성 논리는 그냥 갖다붙인 것이고, 기본적으로는 우리 민족이 이렇게 잘났는데, 그게 기본 동력 아니었겠는가? 민족주의, 이걸 조금 더 강화시키면 쇼비니즘이 된다. 나폴레옹을 너무 사랑했던 병사, 쇼뱅이 하던 이상한 행동들을 그렇게 이름 붙였다.

민족주의와 쇼비니즘, 그걸 정성적으로 구분하기는 좀 어렵다. 어디까지가 극렬한 민족주의이고, 어디까지가 상식적인 민족주의인가? 쉽지 않다. 내 방식의 기준은 이렇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들에게 공분을 일으킨 이정희가 기준점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던 이정희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 민족끼리’의 이정희는 쇼비니스트라고 생각한다. 민족에 대한 정체성이 너무 강해져서 다른 얘기들의 다원성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쇼비니스트다.

자, 이 정도로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을 서로 이해하신다면, 혹은 내가 얼마나 빡빡한 보편주의자 혹은 글로벌주의자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느꼈다면 독자 여러분은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류현진의 지지자들에게 질문한다. 만약 당신이 야구가 아니라 민족 혹은 국적 혹은 인종을 기준으로 류현진을 지지하고 있다면, 당신들은 잠재적 인종주의자일 것이다. 고향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적 발언을 한다면, 그 역시 인종주의자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시하라가 ‘도쿄올림픽’을 못 밀어붙이는 이유

한·중·일 국민, 조정래 선생식으로 이해한 세 나라 국민들은 지독할 정도로 쇼비니스트들이며, 동시에 인종주의자들이다. 그의 소설 속에서 우리가 쇼비니스트인 것까지는 참겠는데, 인종주의자이기도 한 것을 두곤 좀 생각해보고 싶다. 민족주의를 너무 강조하다보면 인종주의자가 된다. 당연한 것 아닌가? 독자 여러분도 생각해보시라. 나의 딸이 흑인과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그 순간 90% 이상의 한국 아버지는 인종주의자가 될 것이다. 조정래 선생은 그 냉혹한 현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시하라 신타로라는 일본 정치인이 있다. 한국에는 그냥 황당한 소리 하는 일본 극우파 정치인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도쿄도 지사를 연임했고 현재 중의원 의원인 실력자다. 그런 이시하라가 도지사 때 추진하지 못한 게 있으니, 그게 바로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주최다. 뭐, 세계 속의 세계, 도쿄가 올림픽 좀 하겠다고 하면 안될 게 없지 않겠나? 특히 한국에서 국제대회 주최하는 사람들이 내건 타당성 이유로 치면 도쿄가 주최 못할 대회는 없다. 그러나 경제성이란 이유로, 도쿄 사람들은 자신들이 결국 찍어주었던 이시하라 도지사의 숙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게 내가 본 일본의 힘이다. 이시하라는 아마도 한국의 모든 국민들이 독도 등 일본과의 문제로 증오하고 싫어하는 바로 그 도쿄 도지사의 이름이다. 이건 우리가 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이시하라가 황당한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본의 시민사회 그리고 일본의 관료, 그건 우리에게 없다. 만약 뒤집어서 우리가 이시하라 입장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했을까?

자, 경제학자로서 냉정하게 얘기하자. 하계올림픽을 포함해서 지난 수십년 동안 객관적으로 유일하게 흑자였던 국제경기는 애틀랜타 하계올림픽 외에는 없다 많은 현지 기업들이 죽어라고 밀어줘서 겨우 흑자가 되었다. 그리고 동계올림픽의 경우는 일본 나가노를 비롯해 거의 예외 없이 그 도시가 장기불황에 휩싸이게 되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모든 한국인이 최고 성과라고 칭송하는 88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도 경제성이 없어서 그냥 쇼핑몰로 바꾸자 말자는 상황이라는 걸 이해하면 나머지 경기의 결과물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냥 민족주의적 기분을 위한 쇼비니즘이냐, 아니면 현실주의자냐, 그 질문이다. 스웨덴, 스위스, 노르웨이, 이런 나라들이 자기네 선수단은 보내도, 자기네 나라에 뭘 유치한다고 야단법석 떠는 일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1인당 국민소득이 6만달러를 넘는 이런 나라에 쇼비니즘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 사는 것은 다 같다. 그렇지만 토건은 뭐하러 하냐, 쇼비니즘은 실속 없다, 그런 내부적 견제의 힘이 더 강해서 그런 이상한 일은 안 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국제대회 유치하며 애국주의 장사 하지 말기를

최근 모 케이블 채널에서 영화 한 편이 국가경제를 살렸다는 광고를 내보냈다. 뉴질랜드 얘기고, 그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사실과 별로 맞지 않는 얘기다. 피터 잭슨이 뉴질랜드 사람인 것도 맞고, 그 영화를 거기에서 찍은 것도 맞다. 그렇지만 미나스티리스를 비롯해서 <반지의 제왕>의 주요 영화세트는 촬영 종료 후 철거되었다. 상대적으로 짧게 진행된 이 영화의 고용상황이 뉴질랜드 경제구조에 의미있는 영향을 주었을 리도 없고, 한국식으로 세트장 구경거리를 만든 바도 없다. 실속이 있는 건 맞지만, 그걸로 국민경제를 살렸다는 것은 뉴질랜드 경제에 대한 모욕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반지의 제왕>의 세트장을 유지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그들은 쇼비니스트도 아닐뿐더러 무척이나 합리적인 선택을 내린 사람들이라는 점.

민주당이 운영하는 지자체들이 있다. 강원도에서는 동계올림픽을, 인천에서는 아시안게임을 각각 유치했다. 두 개 다 경제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민족적 자긍심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앞에 내세우고 중앙정부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두 행사 모두 지자체에 엄청난 부담을 주면서 결국 부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역은 장기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된다. 컨벤션 산업이나 쇼 비즈니스에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여기에 아주 익숙한 패턴으로 광주의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문제를 일으켰다. 따져보면 예비 타당성 평가 등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조치가 맞는 방향이기는 한데, 왜 하필 광주한테만 이래, 그런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지자체의 쇼비니즘에 정권의 지역차별적 내부 인종주의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쉽게 누구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다. 국제대회 유치는 물론이고, 국제기구 유치까지 이제 한국에서는 쇼비니즘 논리대로 움직인다. 송도에서 보지 않았는가? 민족주의, 인종주의, 여기에 땅값 오른다고 하는 토건까지, 하여간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쇼비니즘 경제를 따라 움직인다. 실제로는 경제성이 거의 없지만,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국민 세금으로 다 메울 것인데.

황우석이 말했다. “과학에는 조국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국가주의와 쇼비니즘을 결합시킨, 정말로 쇼 비즈니스적인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과학자에게는 윤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이게 지난 시기를 보낸 우리의 쇼비니즘에 대한 태도였다. G20 행사를 치른 코엑스, 이곳이 앞으로도 쇼비니즘의 상징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좀 더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상징으로 남을 것인가? 여기에 한·중·일이 걸어가게 될 미래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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