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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죄송하답니까]

읽으면서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 좋은 글이라 그냥 옮깁니다. 용서해 주십시요.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47]

가난 탓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집세를 잊지 않은 선량한 사람들… '안현수 문제'에는 분노하다가, 입을 닫은 당신이 절망스럽습니다

2월20일쯤이었다니,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하던 날입니다. 내가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피겨 스타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숨죽이며 지켜볼 때 세 모녀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탱고 ‘아디오스 노니노’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탄성과 박수가 터져나올 때쯤엔 아마 그들의 시야는 흐려지고 있었고, 채점 결과가 나왔을 때는 세상을 떠난 뒤였겠지요. 제가 적당한 술기운에 탄식과 울분을 토한 것은 러시아식 피겨 채점 결과 때문이었지, 모진 세상을 뒤로 한 채 쓸쓸히 떠난 그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티브이 해설자는 울부짖고, 고양이는 안타깝게 문을 긁어대고….

생각을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이 저주스런 장면은 지워지질 않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얼마나 원망스럽고 서러웠을까. 작은딸의 메모엔 이런 내용이 있었더군요. “비참하군…, 그런데 언제는 비참하지 않았나….” 도대체 한 하늘을 이고, 한 나라의 국민이 되어, 때론 형제자매라 이름하며, 소치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며 함께 감동하고 함께 분노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어떤 이들은 저렇게 죽어가고, 나는 치맥을 즐기며 환호작약하고…,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었던 것일까요. 법 없이도 살아온 저들에게 국가는 무엇이었던 걸까요.

죽어가면서 두 번씩이나 죄송하고, 정말 죄송하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엇이 죄송하답니까. 생사의 갈림길, 그 아득한 벼랑 위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누가 그들에게 단 한 번의 따듯한 눈짓이라도 보냈던가요. 차라리 20원짜리 흰 봉투에 담긴 돈 70만원으로,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못 마시는 술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실 일이지, 그도 아니라면 환상열차, 눈꽃열차를 타고 세 가족이 함께 손잡고 기차여행을 갔다가 먼저 떠난 아빠에게 갈 일이지, 그 돈은 왜 남겼답니까.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은 집 보증금에서 덜어내도 될 일 아닙니까. 권력을 쥐기 위해 온갖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반칙하고 생사람 잡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들, 더 벌고 더 출세하기 위해 이웃과 친구를 밟고도 히죽거리는 세상, 그런 세상 앞에 무엇이 죄송하다는 말입니까.

25일, 그러니까 세 모녀의 차가운 주검이 골방에 방치돼 있을 때 당신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3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을 2만5000달러에서 3만4162달러로 늘리고, 고용률을 64.4%에서 70%로 늘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이 보고 들었다면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고용률이 그렇다면 적어도 세 명 중에 두 명은 돈을 벌어들일 테고, 그러면 가족 중 한 사람이 실수로 빙판에서 넘어졌다고 가족 모두가 죽음으로 떠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니까요. 당뇨와 고혈압, 장기 중증 질환을 앓고 있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나라, 그 고통을 가족이 온전히 짊어지게 하는 나라, 가난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었는데 다시 딛고 일어날 기회가 봉쇄된 나라, 사고로 다치면 일을 할 수 없고 일을 못 하면 먹고 마시지도 못하는 그런 나라가 그들의 현실인데, 연간 국민소득 3만5000달러라니요.

게다가 조금이라도 지원받으려면, 얼마나 비굴해져야 하는지. 비굴하게 두 손을 벌려야 하고, 더 비굴하게 저의 비참을 꼬치꼬치 드러내고 또 입증해야 하고, 더 비굴하게 권력이든 돈이든 그 앞에서 설설 기어야 합니다. 설사 1인당 국민소득이 3만5000달러가 아니라 5만달러라도 저 세 모녀에겐 그림의 떡이었을 겁니다. 그보다 훨씬 더 잘사는 미국 국민들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잘사는 사람들은 더 잘살고, 못사는 사람들은 더 가난해질 테니 말이죠. 상위 1%의 미국인이 미국 총수입의 22%를 가져가고, 0.1% 미국인이 그중의 절반인 11%를 가져가는 나라에서, 그건 잠꼬대 같은 소리일 뿐입니다.

유가족은 이렇게 전했죠. 도움이라도 주려고 하면, 숨진 박씨에게 오히려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고. 살아가면서 먹고 입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자존감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이웃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고, 앞날이 깜깜한데도 이웃에게 아쉬운 손을 벌리고 싶지 않은 자존감.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그런 사회에서 아등바등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세 모녀에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었습니다. 그들은 알량한 몇 푼 얻으려, 고약하게 털어대는 이 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았습니다.

잘난 이들은 혹시 이렇게 빈정대겠죠. 루저에 낙오자 주제에 무슨 자존감인가? 옛날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구휼미를 주더라도 그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퍼갈 수 있도록 쌀독을 집안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었죠. 또 어떤 이는 그래도 자존심이 상할까 봐, ‘이 쌀은 나라에서 내린 것이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미안해하지 말고 가져가시오’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자존감은 국가의 자존심입니다. 국민을 비굴하게 만들지 말고, 그런 자존심을 살리도록 하는 게 바로 국가의 품격을 지키는 일입니다.

무상급식을 놓고 당신들은 얼마나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 속을 아프게 했습니까. ‘부자 급식’이니 뭐니 하는 이유를 들이대며 아이들을 거지 취급했죠. 그리고 선별급식이라 하여, 공짜로 밥 먹는 아이들이 다 드러나도록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중인환시리에 그렇게 공짜 밥 먹는 아이들의 심정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봤습니까. 밥이 아이들 목으로 제대로 넘어가기나 할까요?

유신시대에는 ‘나의 조국’이란 노래가 있었고, 5공 정권 때는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가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음반에 한 곡씩 싣도록 한 건전가요의 대명사죠. 그런데 가사가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아 대한민국’입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도시엔 우뚝 솟은 빌딩들, 농촌엔 기~름진 논과 밭/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곳/ 도시는 농촌으로 향하고, 농촌은 도시로 이어져/ 우리의 모든 꿈은 끝없이 세계로 뻗어가는 곳// (후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광주 학살에 이은 삼청교육대, 녹화 사업, 장영자 이철희 독직 및 사기 사건, 아웅산 사건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천박한 나라로 지목받고, 심지어 우리 국민이 들쥐떼로 조롱당하던 시기에 정부가 부르도록 사실상 강제한 노래였습니다. ‘박정희 작사 작곡’의 ‘나의 조국’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노래 그런 가사로, 혹은 그런 국민소득, 고용률 따위의 숫자로 우리 현실을 현혹하려 했던 게 30~40년 전인데, 또다시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아 착잡합니다. 2012년 우리 국민의 자살 숫자는 1만4160명으로 인구 10만명당 33.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입니다. 자살 원인의 압도적 1위는 경제적 어려움입니다. 요즘엔 가족이 함께 떠나는 경우가 급증합니다. 빈곤 탓이겠지요. 한편에선 돈 쓸 곳이 없어 400조원 이상이 회사 금고에 처박혀 있고, 다른 곳에선 하루 먹기 힘들어 죽어가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부탁입니다. 우리 국민이라면, 최소한의 거주 공간에서 몸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배고프면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기본소득, 장애인 연금, 중증환자 의료보험, 노동력 상실자 안전망 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건 대부분 당신이 선거 때 약속한 것이고, 그러나 당선되자 외면하는 것들입니다. 죽어가면서도, 공과금과 집세를 잊지 않는 저 가난하지만 선량한 사람들, 살면서 자존감만은 지키고 싶어 하는 바르고 곧은 사람들의 삶의 의욕을 꺾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현수 귀화 문제에는 그렇게 피를 토하다가, 가련한 이들의 죽음 앞에선 아예 입을 닫아버린 당신이, 절망스럽습니다. 그래도 당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처지이니 이렇게라도 부탁할 수밖에. 제발 저들을 돌아보십시요.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 때문에 정치권이 난리지만, 그건 단임 대통령인 당신이 간여할 바 아닙니다. 당신은 오로지 국민의 생명을 걱정하고 그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그들을 지켜줘야 합니다. 제발.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