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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ation by chemotherapy]

2008년 6월 2일 EndoTODAY (암호: smcgi)를 다시 읽었습니다. 제 1회 EndoTODAY입니다. 저로서는 무척 뜻깊은 증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Screening endoscopy의 목적은 수술이나 EMR/ESD로 치료할 수 있는 위선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입니다. 위림프종을 진단하기 위하여 screening endoscopy를 시행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간혹 MALToma나 DLBCL 등이 진단되기도 합니다. 무증상 DLBCL을 어떻게 치료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consensus는 아직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증상이 있어 시행한 검사에서 발견되는 DLBCL에 준하여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몇 논문에서 GI lymphoma의 chemotherapy 후 perforation의 위험이 과거에 생각하였던 것보다 높지 않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 증례처럼 아직도 간혹 chemotherapy 후 perforation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환자에 이러한 위험을 알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전에 서울대학교 허대석 교수님께서 내과학회지에 기고한 논평을 소개합니다. "위장관에 발생한 악성림프종환자에 대하여는 항암화학요법으로 출혈이나 위장관 파열의 위험이 증가하지 않으면서"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허대석 교수님의 의견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종종 천공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대석 교수님의 말씀처럼) 임상연구에 의한 자료는 제시할 수 없지만 제 경험은 그러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하는 경우, 출혈이나 위장관 파열로 인하여 환자에게 불이익을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번호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항암제치료만 시행한 환자에서의 부작용에 대하여 자세한 언급이 없으나, 국내에서 시행된 다른 연구의 결과에서는 출혈이나 위장관 파열은 거의 문제시되고 있지 않다고 보고하고 있다. 항암화학요법만으로도 동일한 치료성적을 얻을 수 있다면, 위장관에 발생한 악성림프종환자에 대하여 굳이 수술이 필요하지 않고, 장기의 기능을 보존하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삶의 질'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명확한 결론은 무작위 배정에 의한 제3상 임상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현재까지의 여러 가지 임상연구의 결과는 위장관에 발생한 악성림프종환자에 대하여는 항암화학요법으로 출혈이나 위장관 파열의 위험이 증가하지 않으면서도 우수한 치료성적을 보이고 있다."


위림프종 항암치료 도중에만 천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선암(gastric adenocarcinoma) 항암치료도 천공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Signet ring cell carcinoma였는데 XP 3 cycle후 천공된 예입니다.


[2013-8-21. 경향신문] ‘아래로부터’ 증세정치

박근혜 정부가 직접 증세는 아니지만 사실상 증세를 담은 세법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증세 논쟁의 불을 지폈다.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모두 ‘기업 투자와 부자 소비’를 명분으로 오로지 감세로만 치닫던 걸 생각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세금폭탄론 파동을 겪었지만, 보편복지 세력에게는 증세 논의를 본격적으로 벌일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진보 지식인 일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시민의 조세 정서를 무시한 채 증세만을 당위적으로 외친다는 지적이다. 경청할 이야기다. 실제로 보편복지를 주창하는 정당,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넘어 세금 당사자들과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가? 시민들이 손보라는 재정지출, 과세인프라 개혁 등에선 별다른 방안도, 활동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말로만’ 증세 선명성 경쟁을 벌여오지 않았는가? 증세는 복지재정 방안의 하나일 뿐이다. 증세를 외치는 세력일수록 시민들의 조세 정서를 경청하고, 비증세 영역의 재원 확보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증세 정치가 험난하고 기존 증세론이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증세 논의 자체를 홀대하는 건 문제다. 보편복지 세력에게 증세는 이미 선택 사항이 아니다. 지금까지 보편복지 세력이 선언적 증세에만 그쳐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면 이제부터 해내는 게 숙제이지 않은가! 비증세 영역만 고집하는 박근혜 대통령도 증세 논의를 가로막고 있다. 이미 복지 확대는 시대적 요구로 자리 잡았다. 지출 합리화, 지하경제 양성화 등에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이 재원만으로 복지공약을 이행하기 어렵다는 게 다수의 전망이었고, 집권 반년이 지나면서 더욱 확인되고 있다. 국민들에게 솔직하고 당당하게 증세를 제안하라.

이제 제대로 증세 정치를 펴자. 세금 불신을 부추기는 과거회귀식 정치가 아니라 아이들이 살 미래를 가꾸는 세금 정치가 필요하다. 아직도 조세 저항의 장벽이 높지만 근래 보편복지 담론이 확산되고 급식, 보육, 기초노령연금에서 복지를 체험하면서 복지를 위해서라면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인식이 싹트고 있다. 몇몇 복지시민단체는 우리도 형편껏 낼 테니 대기업, 상위계층도 책임을 다하라는 시민 증세 활동도 시작했다. 이번 주말부터는 사회복지세 도입을 위한 거리 서명전에도 나선다. 세금 불공평에 화가 난 탓에 차라리 세금에 저항하는 게 ‘조세 정의’로 받아들여지던 대한민국에서 이는 소중한 변화의 싹이다. 복지를 누릴 당사자들이 자신의 세금을 생각하고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증세 정치의 성패를 좌우할 주인공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참에 기존 ‘부자증세’ 슬로건도 ‘복지증세’로 전환하자. 부자증세는 부자만 내라 한다. 과연 부자들이 솔선수범해 세금을 내고자 할까? 서구 복지국가 경험에서도 보듯이, 이는 시민들의 거대한 압박이 없으면 가능치 않은 일이다. 이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까? 소득세는 강한 누진도를 지니고 있다. 중간계층부터 동일하게 인상해도 사실상 부자증세 효과가 발휘된다. 그렇다면 나도 내니 당신들도 제 몫을 다하라며 나설 때 훨씬 위력적으로 부자 호주머니를 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받는 복지를 떳떳하게 느끼면서 부자, 대기업에 더 많이 요구하는 당당함도 가지게 말이다. 복지증세는 세금만 이야기하는 부자증세 논리의 약점도 넘어설 수 있다. 세금은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복지를 위한 세금임을 분명히 하자. 세금과 복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더 내는 월 1만3000원만 이야기하면 이 돈은 모두에게 부담이지만 복지를 함께 생각하면 공존의 입구일 수 있다.

이번 세법개정안 논란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세금폭탄론과 복지증세론을 모두 깨웠다. 만약 후자에 주목한다면 시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증세 정치를 펴야 된다고 알려주었다. 당사자가 말하게 하자. 정작 1만3000원을 내야 하는 시민들이 세금과 복지를 함께 생각하고, 내 세금이 복지재정 확충의 지렛대라고 자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증세는 가능해질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증세 정치를 고대한다.


[2013-8-21. 경향신문] 촛불시위는 왜 취미생활이 되었나

문화평론가 허지웅씨가 “국정원 이슈는 문제지만 시국선언은 오버라고 생각”한다고 트위터에 글을 쓴 것은 8월18일 오후 9시24분의 일이었다. 그는 “지금의 촛불도 취미활동 이상의 충분한 당위를 찾을 수 없다”고 따끔한 비판을 내놓았다. 이 발언은 사건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보도를 사건하는 언론들에 의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여기서 우리는 저 발언 속에 몇 가지 전제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국정원 이슈가 큰 문제다. 둘째, 그러나 그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시국선언이나 촛불시위 등을 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셋째, 촛불시위는 한낱 취미생활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아니어야 한다. ‘촛불이 취미냐’라는 말이 유독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특히 세 번째 전제에 대해서는 허지웅씨와 그의 비판자들이 모두 확고한 동의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일단 국정원 이슈가 큰 문제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체 왜 국가 정보 기관이 일간베스트나 오늘의유머 같은 웹사이트에서 전직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리플이나 달고 있어야 하는지, 그것이 대북 심리전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문제다. 우리가 낸 세금이 특정 웹 서버의 저장 용량을 낭비하는 일에 소진되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것이 대선 개입을 위한 정치공작이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왜 사태가 진척되지 않고 있을까? 대학생, 대학 교수, 기타 다양한 집단 및 개인들이 시국선언을 내놓고 있으며, 특히 최근의 폭염을 뚫고 촛불시위가 열리고 있다.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감방의 여름이 겨울보다 훨씬 힘들다는 일화가 등장한다. 겨울에는 추우니까 다닥다닥 붙어있어도 괜찮고 오히려 서로 의지가 되지만,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짜증을 내고 다투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촛불을 켠 사람들이 좁은 간격으로 모여 앉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지금 벌어지는 촛불시위는 바로 그런 극기훈련의 현장이다.

문제는 그것이 단지 취미생활일 리가 없으며, 그렇게 끝나서도 안 된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놓고 보더라도 국정원 사건은 국가적 스캔들이다. 그런데 왜, 선량한 시민들이 이 무더운 여름날 더불어 숲이 되어 촛불까지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전혀 진전되지 않는가?

생각해보자. 어차피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촛불시위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경찰 버스로 막아놓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민주당 또한, 실은 촛불시위에 나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이유가 없다. 촛불들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그들을 아무리 실망시킨다 한들, 이 더위를 뚫고 촛불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결국 민주당을 찍을 것이다.

손 안에 들어온 새에게는 모이를 주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던가. 몇 차례에 걸친 정치공학적 선거 놀음을 통해 체계적으로 진보정당이 압살된 지금, 현재의 정치적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내부 갈등을 정리하고, 대안적 행보를 보여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촛불 시민’들은 ‘도로 민주당’ 할 텐데.

야당이 야성을 잃은 이유는 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배가 부른 것은 ‘밥그릇’을 뺏길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촛불시위가 취미활동이냐는 말 자체에 분노하지 말고, 그것이 한낱 취미생활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하는 진짜 원인이 어디 있는지 살펴보시라. 원세훈은 국정조사 자체를 우롱하고,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공개해도 직원 얼굴은 일급비밀이라고 우긴다. 이런 상황에서 어벙한 얼굴로 끌려다니며 ‘촛불 시민 여러분, 힘을 내주세요’라고 말하는 그들이야말로 촛불시위를 ‘취미생활’로 전락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