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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 Maggot]

EndoTODAY 애독자의 증례입니다.

술을 즐겨 드시는 고혈압, 당뇨병을 가진 독거노인으로 소변/대변 실금한채 의식잃고 쓰러진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가족과 연락이 있었는데, 정황으로 보아 3-4일 정도 쓰러져 계신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환자 주변에 파리가 들끓고 있었으며, 대변에 검붉은색으로 hematochezia가 섞여 있었습니다. 입원후에도 한차례 300cc가량의 hematochezia가 있었습니다.

내원 당시 BST high, ABGA 7.355-21.5-112.8-10.9-98.1%, Ketone body (+), Osm 399로 DKA + HHS 에 의한 의식 소실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BUN/Cr 247.5/3.65 (FeNa 0.2%)로 dehydration 에 의한 AKI와 azotemia도 있었습니다. Hydration, insulin 투여 등으로 회복되는 추세였습니다. 어느 아침 많은 벌레가 항문으로 나오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전공의가 '구더기 아닌가요?'라고 했다지만, 주변에서는 설마했던 모양입니다. 의뢰받고 저도 '설마 구더기일리가...... 요충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생리식염수에 담가 기생충학 교실로 보내 동정할 것을 추천하였습니다. 다음 날 구더기(maggot)로 확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파리(fly)의 유충(larva)인 그 구더기 말입니다. 더러운 물이 고인 곳, 쓰레기 더미 등지에서 볼 수 있는 하얗고 징그러운 벌레들 말입니다.

어느 인터넷 블로그에서 가져온 구더기 사진입니다. 비교해보니 구더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PubMed를 찾아보니 Endoscopic discovery of a worm larva at the base of a gastric ulcer라는 증례가 있었습니다. 원문을 확인할 수 없어서 구더기가 맞는지 알기 어렵습니다만... 여하튼 관련 경험이 있으신 분은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왜 제가 구더기를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한 마디로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한 마리를 근접촬영한 것은 더더욱 처음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다 알던 것을 요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옛날 사람보다 우리가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용이 바뀐 것 뿐이지요. 좀 안다고 잘난 척 하는 건 바보짓입니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을 알 뿐이니까요.

Jared Diamond 박사가 쓴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의 일화를 옮깁니다 (215쪽).

박사님께서 뉴기니 원주민과 함께 생태 탐사를 하던 중 야생 버섯을 먹는 장면입니다. 박사는 독버섯일까봐 안절부절하였는데, 원주민들은 태연하고 맛나게 야생 버섯을 먹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독버섯인지 아닌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원주민이 답했습니다.

"당신은 벌써 수십 년 동안 우리에게 수백 가지 나무나 새의 이름을 꼬치꼬치 캐묻고 다녔는데 어떻게 버섯의 이름도 모를 것이라면서 우리를 모욕할 수 있으냐? 독버섯과 안전한 버섯도 구별하지 못할 만큼 멍청한 놈들은 미국인들뿐이다."

기생충학 박사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이번에 저는 구더기를 못 알아봤습니다. 좀 더 겸손해야 함을 느낍니다.

© 일원내시겨교실 바른내시경연구소 이준행. EndoTODAY Endoscopy Learning Center. Lee Jun Ha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