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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열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교실 서민 교수께서 쓰신 기생충열전을 읽었습니다. 사실 저는 서울대학교 기생충학교실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타칭 기생충학 박사입니다. 그래서 기생충에 대한 책을 거의 다 읽어보고 있는데, 서민 교수님의 기생충열전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Best of Best !

저의 지도교수님을 포함하여 여러분이 추천의 글을 쓰셨습니다. 그 중 EBS 다큐멘터리 'PARASITE 기생 寄生'의 PD 박성웅님께서 쓴 추천의 글을 옮깁니다.

7월에 방송하는 EBS 다큐프라임 'PARASITE 기생 寄生'의 제작에도 참여해 많은 도움을 주신 서민 교수님은 우리나라에서 기생충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분이다. 평소에 재미있게 읽었던 네이버캐스트의 글을 바탕으로 책을 낸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역시나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기생충을 소개해 주셨다. 기생충 에방, 감염 증상, 치료 방법, 위험성은 물론이고, 기생충의 역사부터 기생충으로 고칠 수 있는 병까지 우리가 몰랐던 부분을 다루어 아주 흥미로웠다. 이 책이 여러 가지 편견을 깨고 기생충을 제대로 알리는 역학을 다할 수 있길 기대한다.

여러분들도 꼭 한권씩 사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빌려 보시면 안 됩니다. 후원한다는 의미로 꼭 가까운 서점에서 한 권 사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여러권 사서 주변 분들께 권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제가 밑줄 친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어떻게 된 게 일반인일 읽을 만한 기생충 책이 세 권밖에 없냐?" 자료 조사 차 인터넷을 뒤지다 발견한 블로그에서 이 글을 보는 순간 부끄러움이 앞섰다. 기생충 감염자가 150만 명을 넘고, 봄가을로 구충제를 먹는 게 일상화된 나라에서 일반인을 위한 기생충 교양서가 이렇게 없다니...... 기생충학자들은 늘 "사람들이 기생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거나 "기생충이 멸종했다고만 생각한다"고 불평했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거였다.

학자들은 자신의 전공분야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알리고 관심을 높이려는 노력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내시경을 전공하고 있지만 일반인을 위한 글을 써 본 경험은 몇 번 되지 않습니다. 서민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크게 반성해 봅니다.

세상에 뚱뚱한 사람은 있어도 뚱뚱한 기생충은 없다.

우리의 탐욕에 대한 한 방. 이런 글을 쓴다는 점이 서민 교수님의 매력입니다. 속 시원하지 않습니까?

기생충이 박멸되는 날이 과연 올까? 바퀴벌레나 모기가 박멸되는 광경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인류의 탄생부터 쭉 함께해 온 기생충도 박멸될 것 같지는 않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만드는 말라리아만 해도 세계보건기구의 박멸 노력을 비웃듯 창궐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나라의 기생충 감염률 2.6%도 그리 낮은 수치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130만 명의 기생충 감염자가 있다는 말인데,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기생충이 거의 없다 보니 별반 관심이 없지만, 기생충은 우리의 관심 여부에 무관하게 앞으로도 쭉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꼭 '기생충학자'라는 타이틀은 아닐지라도 기생충을 아는 학자가 앞으로도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제가 EndoTODAY를 통하여 기생충에 대한 정보를 전하고자 하는 것도 비슷한 생각때문입니다. 일반인은 물론 의료인까지 기생충질환을 사라진 질병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아직 국내에는 적지 않은 환자가 기생충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간단히 진단되고 쉽게 치료되던 기생충질환이 최근에는 진단이 늦어지거나 약제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혹 기생충질환이 발견되더라도 경험이 부족하여 우왕좌왕하기도 합니다. 의사가 기생충을 잊으면 환자가 고생합니다. 의사가 요충의 치료원칙을 몰라서 환자가 고생한 예를 소개합니다. 수 년 전 디지털 조선일보에 나왔습니다.

요충은 접촉감염성 윤충으로 어린이, 인구밀집지역, 겨울철에서 많습니다. 대변검사로 진단이 어려우므로 스카치테입 anal swab으로 충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종 항문 주위에서 벌레를 볼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 의사들은 누구나 아는 상식같은 것인데 젋은 의사들은 아는 분이 많지 않더군요. 요충의 치료원칙은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이 원칙들을 알려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치료되지 않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무조건 재발합니다. 저는 항상 이 문제를 시험에 냅니다. "요충의 치료원칙을 쓰시오."

1) 가족 또는 단체 구성원 모두를 동시에 치료한다.
2) 3주 간격으로 3회 이상 반복 치료한다 (기생충약이 larva를 죽이지 못한다).
3) 손톱을 잘 깎고, 목욕을 자주하고 손을 잘 씻는다.
4) 내복과 침구를 일광 소독한다.
5) 방안의 먼지를 깨끗이 청소한다.
6) 좌변기를 비누로 매일 청소한다.


여러 신문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개의 글을 실었습니다. 가장 잘 된 글을 소개합니다.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를 쓴 정준호 박사의 글입니다.

[프레시안. 2013-9-27] 잘생겼다! 내 속에 품고 싶다! 그 이름은 기생충!

'기생충에게 관심과 사랑을'이라고 외치며 사람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항상 해왔던 이야기가 있다. '기생충 붐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많은 기생충학자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거의 사라진 기생충들이 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시금 옛날처럼 기생충에 관심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19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기생충 연구는 공중 보건과 기초 의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소득 국가들에서 기생충이 점차 사라져가며 지금은 오히려 '소외열대질환'이라는 이름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 문제가 적절한 보건 환경도 갖추어져있지 않고 감염의 위험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취약계층에 점차 집중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만큼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생충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진 생물들이다. <기생충 열전>(서민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에도 등장하다시피, 기생충은 인류의 역사를 설명해주기도 하고, 예술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며, 최근에는 심지어 질병을 치료하는 치료제로 쓰이기도 한다. 나는 기생충이라는 이 흥미진진한 세계를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으면 했다. 그런 희망으로 기생충 관련 책(<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후마니타스 펴냄, 2010))을 냈지만 바라던 기생충 붐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꿈이 최근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서민 교수의 활발한 활동으로 기생충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고, 기생충 관련 다큐멘터리도 방영되었으며, 기생충이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로 등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민 교수의 책이 있다. <기생충 열전>에는 오랫동안 기생충학에 몸담아온 학자의 열정과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다. 불과 몇 년 되지 않는 경험을 바탕으로 쓴 내 책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가 있는 저작이다. 기생충을 책으로만 배운 사람과 오랜 실전 경험을 통해 익혀온 분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서민 교수는 특히, 한국에서 출토된 미라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기생충들을 연구하는 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경험을 토대로, 과거에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 신분고하와 관계없이 모두가 기생충에 감염되었기에 기생충이 '평등의 상징'이었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 영국에서 리처드 3세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유골이 발견된 흙에서 회충알이 발견되어 왕조차 기생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기사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책의 곳곳에는 한국 기생충학자들의 치열한 노력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가 있다. 한국의 기생충학자들은 기초의학의 불모지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워왔다. 한국의 기생충 관리 사업은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힐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학자들의 노력이 체계적으로 기록된 적은 없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숨은 뒷이야기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서민 교수 본인이 눈에 기생하는 동양안충이라는 기생충을 직접 눈에 넣은 이야기나 다른 학자들이 견본으로 쓸 성충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몸 안에 기생충을 키웠던 이야기를 보면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진다. 기생충 하나쯤 몸에 키워보는 것은 모든 기생충학자들의 로망 아니던가. 책의 내용을 살짝 발췌해 보자.

"장디스토마의 세계적 대가이신 서울의대 채종일 교수는 이 기생충에 걸리면 어떤 증상이 생길지, 또 몇 마리쯤 감염돼야 증상이 나타날지 궁금했다. 기생충학의 오랜 전통답게 채 교수는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기로 하셨고, 연구원으로 일하던 김재입 선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
- 일곱 마리를 먹은 채 교수의 증언: 5일째부터 궤양 비슷한 통증이 있었다. 7일째가 되니 온몸의 쇠약감이 느껴졌다. 이 증상은 기생충 약을 먹었던 28일째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됐다. 설사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 스물일곱 마리를 먹은 김 선생의 증언: 7일째부터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궤양 비슷한 심한 통증이 찾아왔고, 온몸의 쇠약감이 느껴졌다. 이 증상은 기생충 약을 먹었던 28일째까지 쉬지 않고 계속됐다. 너무 아파서 잠도 못 잘 지경이었다. 19일째부터는 설사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하루도 설사를 안 한 날이 없다."
정말 가슴 두근거리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자칭 기생충 애호가로서 기생충 한마리쯤 몸에 품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단순히 기생충의 학술적인 면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찾을 수 없는 다양한 기생충들을 하나하나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보다 긴밀히 접촉한다. 대변을 통해 나온 기생충 조각 -촌충- 을 병원에 들고 온 남성의 이야기, 선모충 감염 증세가 있는 사람의 부인에게서 문의 메일을 받은 이야기, 미나리즙을 먹고 간질에 걸린 여성들의 이야기 등, 실제 현장에서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들과 만나고 이를 진단하는 과정을 풀어내는 서술은 추리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과거 '대통령과 기생충'이라는 기생충 추리소설을 내셨던 저력이 나오는 듯하다.

또 한국 내 기생충 주요 감염 경로나 주의사항 등을 상세히 적어 놓았는데, 주로 외국의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 일반 의학 정보 포탈에서는 찾을 수 없는 내용이라 더욱 가치가 있다. 서문에 있는 말 그대로 국민 보건의 향상에 일조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는 바로 곳곳에 들어있는 기생충 사진들이다. 내가 책을 낼 때는 기생충 사진이 너무 혐오스러울 수 있다는 이유로 각 장의 끝에 사진들을 '격리 조치'시켜 사진만 따로 볼 수 있게 해두었다. 하지만 <기생충 열전>에는 진짜 기생충학자다운 자신감으로 구석구석 현장감 넘치는 사진들을 '적나라하게' 배치했다. 기생충은 그 생김새만으로도 매력이 넘친다. 충격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적절한 삽화의 사용은,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기생충의 매력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책의 감상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다. 진짜배기가 나왔다. 책을 읽으며 내 공부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그리고 한국의 기생충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았는지 새삼 깨달았다. 다시금 기생충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불을 지펴주신 서민 교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그의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기생충에 대한 관심과 저변이 점점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 책을 계기로 '기생충 붐'이 꼭 돌아왔으면 좋겠다. 기생충에게 관심과 사랑을!


링크 - 엔도투데이 기생충학


멋진 수다. 두 권의 책에 대하여 세 명이 잡담을 나누었다. 흥미로운 부분을 옮긴다.

[2013-10-11. 프레시안]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행의 시대><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사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 나오는 불평등의 현실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 같지만, 통계로 다시 확인했을 때 여전히 놀랍습니다. 1대 99도 미화된 겁니다. 0.1대 99.9의 사회라고 봐야 하죠. 바우만도 초반에 통계를 인용하고 있지만, 세계 최고 부자 1000명의 부를 합하면 가난한 25억 명의 재산을 전부 합친 것의 두 배에 달합니다. 인류 역사상 이런 시대가 없었어요. 통상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불평등의 단계에 도달했다는 겁니다. 거기에 대한 자각이 우리에게 부족하지 않은가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통계상의 조작까진 아니더라도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표현 중에, 상위 20퍼센트와 하위 20퍼센트 등의 문구를 떠올렸습니다. 그 문구 속에서 상위 20퍼센트 내의 차이가 지워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49쪽에 보면, 바우만은 "아무런 증거가 없이도 '명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암묵적 전제들' 네 가지를 제시합니다.

1) '경제성장'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

2) '영구적으로 늘어나는 소비'입니다. 즉 '소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리라'죠.

3) 인간들 간의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다.

4) 경쟁은 사회 질서의 재생산과 사회 정의의 필요충분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