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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침몰로 우울한 기간입니다. 어두운 마음으로 환자안전에 대한 강의를 하였습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PPT PDF 1.2 M). 세월호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대부분은 문제가 없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생각이라는 화두로 시작하여, 시스템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엄청난 반복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때로는 환자를 살릴 시간이 30초 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의 PPT를 보내드린 후 몇 독자께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슬라이드가 있다고 문의 메일을 주셨습니다. 강의를 들으면 금방 알 수 있는데, PPT만 보면 "이게 뭐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세 장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맨 아래 붉은 곡선은 세상사의 변화입니다. 규제라고 봐도 좋습니다. 세월에 따라 이런 저런 규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내용은 조금씩 변합니다. 법률이라고 해도 좋고 제도라고 해도 좋습니다. 규제, 법률, 제도에 따라 조심스럽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세상살이라고들 합니다. 파란 곡선처럼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것은 그다지 안전한 방법은 아닙니다. 규제, 법률, 제도에 맞춰 섬세하게 적응하여 살아가는 것은 일견 현명한 행동같지만 줄타기와 같습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려 애쓰다보면 어느 순간 잠깐의 방심으로 규제, 법률, 제도와 충돌하게 됩니다 (붉은 화살표). 사고가 일어납니다. 문제가 벌어집니다.

규제, 법률, 제도의 문구에 따라 행동하면 안 됩니다. 취지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조금씩 흔들리는 규제, 법률, 제도의 문구에 따라 살기보다는 그 취지가 무엇인지 잘 살펴야 합니다. 충분한 안전거리를 두고 높은 곳에서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맨 위의 푸른 직선입니다. 안전을 강조하는 규제가 있다면 그 규제보다 훨씬 안전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윤리를 강조하는 제도가 있다면 그 제도보다 훨씬 윤리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총론은 무시하고 각론에 들어가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되고를 따지기 시작하면 금방 문제가 됩니다. 꼼수에 의존해 살기보다는 조금 우직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우직하게 안전한 방법, 원칙적인 방법을 따르는 것이지요. 바보같아 보이지만 결국 승리하는 방법입니다.

건국대 정신과 하지현 교수가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향신문 2014-4-29)

"새가 3m 높이로 날아가면 지칠 거예요. 조금만 방심해도 여기저기 부딪치니까요. 하지만 10m 높이로 날아가면 잠시 놀거나 졸아도 안전하거든요.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나 자신을 컨트롤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럴 때 외부와의 소통이 되는 겁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강의시간에 김밥을 나눠드렸는데 몇 명이 설사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더운 날씨에 김밥이 상했던 것이지요.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방법이 있습니다. (1) 김밥 집을 바꾼다. 좀 더 크고 유명한 김밥집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2) 아침에 사온 김밥을 냉장고에 보관한다. 냉장고에 넣어 두면 덜 상하지 않을까? (3) 김밥을 나눠주기 전에 검사를 한다. 잘 살펴보고 냄새를 맡아보면 상했는지 안 상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4) 김밥 집에 직원을 파견하여 깁밥이 안전하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점검한다...... 등등

또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앞으로 점심시간을 이용한 강의에는 처음부터 김밥을 쓰지 않는 전략입니다. 대신 유통기한이 찍혀있는 포장된 빵을 나눠드리는 것입니다. 김밥은 아무리 조심해도 상하기 쉽습니다. 단체 급식에는 애시당초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확실하게 안전한 방법을 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이 마음에 드십니까? 저희 병원에서 진행하는 SMC Quality Academy에서는 유통기한이 찍혀있는 포장된 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맛있고 따뜻한 밥은 자기 집에서 먹고 직장에서는 다소 차갑지만 안전한 빵을 먹는 것이지요. 미국 학회에 가 보면 차디찬 마른 빵을 줍니다. 우리라고 항상 따뜻한 밥을 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CPR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첫 30초입니다. 이 절대절명의 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CPR같은 상황에서 이성적 판단에 따라 이것 저것을 잘 재서 최선의 판단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복된 훈련이 중요합니다. 훈련하고 훈련하고 또 훈련하고....

매뉴얼을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매뉴얼도 소용이 없습니다.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상황과 똑같은 훈련을 통하여 본능적으로 이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느껴져야 합니다. 전문가가 오기를 기다릴 틈이 없습니다. 그냥 내 몸이 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매우 간단한 매뉴얼을 만들어 반복훈련을 해야 합니다.

세월호 침몰장면을 보면서 훈련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첫 30분. 기회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왕좌왕하다가 소중한 시간을 모두 놓쳐버렸습니다.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전과 같은 훈련. 다 알고 있지만 늘 반복되는 훈련. 해상재난훈련이 잘 되어 있다면 아래 사진과 같은 상황에서 뭔가 다른 결과가 벌어졌을 것입니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사람을 위하여 큰 소리로 밖으로 나오라고 방송을 했을 것입니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사람을 위하여 구조대가 내부로 들어가 학생들을 구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안타깝습니다.

다른 곳은 모르겠습니다. 병원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절전에 대비한 실전 대응 훈련을 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화재에 대비한 실전 대피 훈련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terror를 가정한 대량환자 관리훈련을 한 적이 있습니까? 바쁘다는 이유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실제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결과는 뻔합니다. 제 2의 , 제 3의 세월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실제와 같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2014-4-29. 경향신문] "선체 50도 기울었지만… 갑판 위 승객은 없었다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지난 16일 오전 9시35분 해경 123정 보트가 현장에 도착해 촬영한 동영상에서 갑판에는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이 한명도 없고 선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선미 갑판에서 보트를 보고 있다. 세월호가 이미 50도 정도 기운 상태였지만 학생들은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구명조끼를 입고 선실 내부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경 동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