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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1인에게 한국 경제개발의 공을 돌린다고? ]

윌리엄 이스털리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사진)의 <전문가의 횡포>(The Tyranny of Experts)는 요즘 미국과 유럽의 국제 개발협력 종사자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세계은행과 빌 게이츠 재단 등 개발원조 기관이나 정부기구들이 개발도상국들의 빈곤 원인을 기술적 요인에서 찾는 것은 틀린 진단이며, 독재정권에 ‘개발의 기술’을 전수하는 그들의 정책은 빈곤 퇴치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개발협력 정책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기존 개발협력 종사자 대부분은 개도국 빈곤 문제를 놓고 횡포를 부리는 ‘전문가’들에 불과하다고 도발적으로 주장한다.

이스털리는 6일(현지시간) 워싱턴 케이토연구소 강연에서 한국의 개발 경험을 유난히 자주 거론했다. 그 역시 한국이 원조 받은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모한 대표적 사례로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개발을 위해 한국에 독재가 필요했다는 생각은 독재 이후 한국의 경험과 배치된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와 민주화 전환기를 보면 오히려 박정희 이후 성장률이 더 높았다는 점에서다. 이어 “애초 높은 경제성장률을 촉발하기 위해 ‘자애로운 독재자’가 필요했다는 생각도 별로 근거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한국 경제개발의 ‘성공’은 “특정 지도자들의 계획보다는 그 나라가 처한 더 넓은 환경에 기인한다”며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했던 사람들의 열망과 주변 상황을 잘 활용해 사업을 키운 정주영 같은 기업가 정신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현 정부는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다’는 기자의 지적에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돼서 그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경제개발은 그런 독재자 때문이 아니라 그런 독재자에도 불구하고 일어났다고 표현해야 더 정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털리의 책은 미국 오하이오주 한 마을 농민 2만명이 2010년 상업용 삼림 조성을 위해 군인들의 총부리 앞에 강제로 땅을 수용당하는 사례로 시작한다. 이 사업은 세계은행 자금으로 영국 기업이 시행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문제제기에 뉴욕타임스가 고발성 보도를 하고 세계은행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했지만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과연 실제로 일어난 일일까?’ 궁금증을 가질 때쯤 그는 그 일이 일어난 장소가 미국이 아니라 우간다였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세계은행은 소득 증대를 위해 그곳에 삼림을 조성했지만 그 때문에 권리가 짓밟힌 사람들이 그 소득 증대의 수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이스털리는 이날 강연에서 1974년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군나르 뮈르달과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하이예크를 비교했다. 그는 “국제 개발협력계는 ‘가난한 사람들은 권리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권리가 주어져도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없다’는 뮈르달 철학이 평정했고, ‘권위에 대한 과도한 추구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가 유일하게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하이예크의 견해는 철저히 배제됐다”며 “이번 기회에 논쟁다운 논쟁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예크 편에 서있는 것이 분명했다. 기존 개발협력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있을 뿐 구체적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를 단지 몽상가적인 우파 경제학자로 치부하기에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