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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심재훈 교수의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자신을 비주류 중국고대사 전문가로 소개하면서 민족주의 함정에 빠진 한국 고대사학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이지요. 고조선, 낙랑, 식민지근대화론 등 hot 한 이슈가 많이 다뤄집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12쪽)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아름다운 고대사는 그 존재 이유를 점차 상실해가고 있다. (248쪽) 이런 상태에서 진행되는 국내의 적지 않은 연구들이 서구 학자들의 눈에는 상상력 경쟁 이상으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277쪽) 아름답게 꾸며진 한국의 역사를 달달 외워대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안쓰럽다.
(21쪽) 이미 우리는 국민적 염원과 기대를 등에 업은 연구가 아주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과학계의 줄기세포 파동을 통해 여실히 목도한 바 있다. (266쪽) 학문적 성과를 단기간에 기대한다면 그건 사기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239쪽) 한국처럼 정부나 유사역사가들의 입김이 역사 연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아마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작금의 국정교과서나 고대사 연구를 둘러싼 큰 문제들이 생겨난 것이 희극적으로 느껴진다. (246쪽) 학술적인 연구에 정치권의 입김이 개입된다면, 그 결말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작금의 국정교과서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43쪽) 현재 한국의 지나친 영어 지향은 민족주의와 마찬가지로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 발전의 장애요소이다.
(156쪽-) 한국에서 비주류로 산다는 것... 건방진 얘기로 들리겠지만 학술 분야에서 2부, 3부 리그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비주류를 자처하는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 특정 학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여러 행태는 패권추구로 비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사명감으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들 이외에는 학회를 이끌어나갈 실력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했겠지. 물론 2000년대 초까지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의 경우 특정 학맥이 학문적으로 큰 역할을 한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그들이 그때 자신들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그 어려운 학문을 추구하는 이들을 따뜻하게 포용하며 관용을 베풀었더라면 어땠을까.
(198쪽) 서양 사람들이 그리스나 로마 문명을 큰 거부감 없이 공통의 유산으로 여기는 것처럼, 현재 고고학 자료를 통해 드러나는 찬란한 중국 문명을 동아시아 문명의 요람으로 함께 공유하고 즐기며,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이러한 기대가 아직도 사대주의적 사고로만 치부될 것인가?
(242쪽) 청동단검이나 지석묘 같은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문화를 통해 민족을 확인하려는 시도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사실 지난 세기 한국 학계에서 일종의 금기시된 주제였던 낙량은 한국 고대 문명의 형성을 이해하는 가장 큰 핵심 열쇠일 가능성이 크다. (256쪽) 낙랑군이 평양에 존재했다는 사실도 평양에서 발견된 낙랑군의 호구조사 목간으로 이미 상식이 되지 않았는가?
(252쪽) 설사 식민지근대화론을 인정한다고 해도 친일 자체가 미화되는 것도 전혀 아니다. 당시의 근대화는 다른 여러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부산물로 나타난 것이니... 식민지 근대화론의 수용을 친일 미화로 등치시켜버리는 것도, 그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나쳐 보인다.
(259쪽) 여기서 그가 최악 worst 이라고 서운해하는 점음 '고대 한국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어느 누구도 그 잘못된 비난을 반박하여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74쪽) 역사는 비록 증거에 기초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신념의 행위라는 것이다.
(305쪽) 2007년 8월 유엔 인종차별위원회에서 제기한 한국인의 단일 민족의식 극복 권고를 쓴 약으로 생각하고, 민족의 자존 의식은 고수하되 민족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315쪽) 그러나 나를 매혹시켜 전문연구자의 길에까지 들어서게 한 찬란한 중국 고대 문명이 경탄의 대상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상상 이상의 극심한 착취의 산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16쪽) 그 시작은 우리부터 대결적 서술을 지양하고 최대한 정직한 역사를 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경향신문에 실린 심재훈 교수 인터뷰 기사도 볼만합니다.
한국일보의 서평도 좋습니다. 심재훈 교수와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설민석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설민석의 강연은 '모든 얘기가 ‘우리 조상은 훌륭했어요’란 돌림노래의 무한반복'이라고 간단히 정의되었습니다. 마음에 듭니다.
한국일보의 서평 일부를 옮깁니다.
"이 만용을 가능케 하는 건 무엇보다 저자가 단국대 출신이어서, 또 미국에 유학 가서 중국사를, 그것도 중국 고대사를 공부한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 철학계 슈퍼스타 중엔 묘하게도 변방 알제리 출신이 많다. 변방의 경계인이란, 위태로운 자리지만, 그렇기에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눈을 선물로 받는다. 그리고 그걸 정직하게 말하고자 하는 욕망까지도. 그게 축복일지, 저주가 될지는 동시대 사람들의 양식과 수준이 결정한다. 무엇보다 이 국뽕 역사의 시대에 “훌륭한 연구자가 쓴 베스트셀러는 존재하기 어렵다”고 한 말이 울림으로 남는다."
심재훈 교수의 글을 통하여 한국 고대사를 읽으면 느꼈던 막연한 실망감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과장된 민족주의의 결과일 뿐이었습니다. 한민족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근거없는 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는 좀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심재훈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저는 '주류'입니다. 명문대학을 나왔고, 큰 병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보직 교수이고, 학회 임원이니 '주류'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주류'의 삶을 지향합니다. 주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당 내 야당 같은 삶이지요. 무척 힘듭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주류가 주도하는 삶'보다는 '다함께 발전하는 삶'이 옳은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 일원내시경교실 바른내시경연구소 이준행. EndoTODAY Endoscopy Learning Center. Lee Jun Ha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