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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첫번째인가 두번째인가?]

일전에 EndoTODAY 애독자(모 대학병원 교수)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점점 환자에게 비굴해지는 병원, 점점 직원들을 감정노동자로 만드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언급하면서 '환자는 두번째다'라는 새로 나온 책을 권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소개합니다.


[2014-11-25. 애독자 편지]

흥미로운 책이 나와 소개드립니다. 사실 나온지 며칠 안되어 저도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바로 구매해 볼 예정입니다.

전 병원이 백화점화되는 것에 불만이 많습니다. 백화점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물건 팔려면 간이고 쓸개도 다 내준다지만 비굴하기까지 비춰지는 모습은... 관리자들이 거짓된 친절을 강요하는 것도 이상한 유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곳엔 가급적 가지 않습니다. 식당도 차라리 욕쟁이 할머니나 셀프가 더 마음이 편합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무조건 굽신굽신하고, 큰소리치는 환자만 나타나면 이리저리 우르르 달려와 백배사죄하고 (내용이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는 것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마음이 아닌 관리자들의 잘못된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한사람의 돌아선 고객이 100 사람을 돌아서게 만든다"는 옳지 않은 말입니다. 전 그냥 한사람의 블랙 컨수머가 돌아선 것이라 생각합니다. 블랙 컨슈머에게 굽신거리지 말고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직원의 정신건강을 보호하고 다른 환자(소비자)의 권익을 지켜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직원들의 정신건강은 옆에서 봐도 너무 불쌍할 지경입니다. 사비를 털어 맛있는거 사주는 걸로 위로하고 있지만, 그게 사실 제가 할일인가요?

최근 경비원의 죽음으로 이러한 내용에 대한 공론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이도 잠시뿐인 것 같습니다. 늘 하고 싶었지만, 허공의 메아리였던 말을 대신 해주는 책인것 같아 기쁜 마음에 추천드립니다. 읽어보시고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데 큰 힘이 됨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책을 주문해놓고 우선 청년의사부터 읽어보았습니다. 일부를 옮깁니다.

[2014-11-24. 청년의사] 환자보다 직원부터 챙겨야 병원이 성공한다?

누군가 “병원에서 환자는 두 번째고, 첫 번째는 직원들이다”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도 돌이나 안 맞으면 다행일 것이다. ‘환자 최우선’, ‘환자 만족’이 대세인 상황에서 환자를, 온 힘을 다 바쳐 봉사해도 모자랄 병원 직원들(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행정직, 환경미화원 등 병원 내 모든 종사자를 지칭한다) 뒤에 놓으라니. 기자도 화자에게 돌을 던진 한 명이지 않았을까 싶다.

‘환자는 두 번째’라는 말은 텍사스 헬스 장로병원 브릿 베렛 前원장이 자신의 저서를 통해 밝힌 말이다. 미국이니 가능한 일이라고? 그렇지도 않다. 브릿 베렛 원장 또한 이 말을 자신의 저서 제목으로 사용한 후, 아니 쓰겠다고 밝힌 직후부터 미국 내 많은 이들로부터 질책과 협박 아닌 협박을 들었단다. 그럼에도 베렛 前원장은 환자는 두 번째란다.

그의 말의 요지는 간단하다. 의사도 간호사도 약사도, 병원에 근무하는 이들은 인간이다. 이들도 힘들면 짜증을 내고, 짜증은 일에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그들이 돌보는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그러니 보다 근본적으로 환자를 위한다면, 자신들의 직원들부터 위해야 한단다. 그러면 병원 경영 상황까지 호전될 수 있고 한다. 이해가 잘 안된다고? 기자 역시 그를 만나기 전까지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그와 나눈 이야기를 최대한 가감 없이 전달코자 한다. 다만 그의 저서가 인문학서라기보다 경영서임을 염두에 두고 인터뷰를 읽어주길 바란다.


[2014-12-7] '환자는 두번째다'를 소개한 애독자에게;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 소개해 준 '환자는 두번째다 (Patients Come Second)'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바와 같이 요즘 의사, 간호사들은 "죄지은 것도 아닌데 무조건 굽신굽신하고, 큰소리치는 환자만 나타나면 이리저리 우르르 달려와 백배사죄"하는 "거짓된 친절", 엉터리 service mind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한 명의 블랙 컨슈머가 소리라도 치면 외래가 20, 30분 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앞뒤 환자들의 진료가 엉망이 됩니다. 참다 못하여 환자들끼리 싸우는 일도 있습니다. 한심한 일입니다.

'환자중심'을 잘 못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것이 '환자중심' 아닙니다. 우리의 업무 프로세스를 다수의 환자에게 유리하도록, 환자편에서 다듬자는 것이 '환자중심의료'입니다. 모든 환자의 불평, 불만을 일일이 다 들어주다간 제대로 치료할 수 없습니다. 식당에 가 보십시요. 공항에 가 보십시요. 원하는 바대로 다 해주는 곳이 어디 있습니다. 질서와 규율이 있어야 업무가 잘 굴러갑니다.

이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보호자 없이는 진정내시경을 하면 안 됩니다. 환자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떤 환자들은 "알아서 할 것이니 보호자 없어도 진정내시경을 해 달라"고 떼를 씁니다. 이 경우 절대로 물러서면 안됩니다. 그게 환자중심입니다.

환자를 위해서, 환자에게 좋은 것을 하는 것이 환자중심입니다. 환자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것이 환자중심 아닙니다. 물론 무엇이 환자를 위하는 것인지, 무엇이 환자에게 좋은 것이지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환자와 병원의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를 적절히 조절하는 프로세스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환자중심 문화입니다. 그냥 환자 하라는데로 하는 것이 환자중심 아닙니다.

경향신문 컬럼니스트인 박찬일 셰프의 최근 글 '고객님, 호갱님'을 소개합니다. '손님'이면 '손님'이지 '고객님'이 무슨 말이냐는 주장입니다. '가능합니다'면 '가능합니다'지 '가능하십니다'는 무슨 말이냐는 주장입니다. 엉터리 일본식 표현을 쓰지 말자는 주장과 함께 엉터리 서비스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일부를 옮깁니다.

그것까지는 좋다. 백화점이란 용어와 업태 자체가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것이니까. 그런데 그 좋은 말 손님까지 밀어낸 건 분하기까지 하다. 손님, 입에서 굴려보면 덥석 손을 붙들어 반가움을 표시하고 싶은 말이다. 고객이란 한자어는 물건을 사주는 건조한 대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도 우리는 손님을 버리고 고객을 쓴다. 갓 스물이 되었을 어린 학생이 커피숍에서 “고객님, 어떤 커피를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고객이라고 쓰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님자를 붙인다. 틀림없이 일본어 ‘오갸쿠사마’에서 온 것이다. 여러 회사의 고객센터(이 말도 고객이군)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할 때가 있다. 그네들은 하나같이 하이톤으로 ‘고객님’을 외친다. 그 성조조차 일본식이다. 그들은 과장된 높은 톤에 ‘고객님’을 말해야 한다고 배운다. 일본인들이 흔하게 쓰는 그런 말투를 그대로 빼닮았다.

식당에서 서비스하는 직원들이 무릎을 꿇다시피 테이블에 턱을 붙이고 주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건 도대체 어디 관습인가. 그 눈을 마주치기 민망할 지경이다. 누가 그들에게 이런 서비스를 강요하며 고객님과 가능하십니다와 가격을 외치도록 하는가. 말은 정신을 규정한다. 어떤 말을 쓰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내용이 만들어진다. 고객님이라고 쓰면 언젠가는 고객사마 아니 오갸쿠사마라고 말할 때가 온다. 그것이 말의 무서움이다.


'환자는 두번째다'는 직원들이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태도를 가진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환자를 위하여 직원을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직원의 사기를 올려야만 좋은 결과가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부를 옮깁니다.

(27쪽) 병원들은 환자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직원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의식을 고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지내 왔다.

(35쪽) 재미-웃음 창출-는 특히 의료 관련 조직에서 임무 수행에 필수적이다.

(35쪽) 조직의 미션과 비전, 가치를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직원들과는 작별 인사를 고하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직원들을 포상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한다.

(47쪽) 환자들은 의사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싶어 했던 것이다! 환자들을 화나게 한 건 주위의 관심 부족, 자신이 아무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느낌이었다. 긴 설명은 필요없다. 고위층이 의사 충원과 일정 관리가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환자경험에 주위를 기울이자 문제는 해결됐다.

(57쪽) 리더들이 좋은 태도나 품성을 지닌 사람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지닌 사람을 가끔씩 혼동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이 반드시 참여의식이 높은 사람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은 늘 개선 방안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다보니 가끔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환자경험을 향상시키기 위해 늘 노력하는 사람들이요.

(155쪽) 좋은 직원들이 떠나면서 조직이 흔들릴 떄를 오히려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그동안 손대지 못했던 부분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아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올바른 조직문화가 형성되고 그 문화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 좋은 인재들은 떠나지 않는다. 결국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당신이 조직의 핵심가치를 강조하고 그 가치에 따라 인사 관련 결정을 내리면 내릴수록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남거나 떠나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173쪽) "내가 더 외출할수록, 우리의 리더들이 더 자주 돌아다닐수록 직원들은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파크뷰헬스의 최고경영자 마이크 팩넷은 이렇게 말한다. "게다가 나가서 돌아다니다 보면 아주 좋은 에너지를 얻습니다. 영감이 막 떠오릅니다."

(186쪽) 진심이 없는 칭찬은 직원들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지름길이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직원들은 당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걸 정확히 알아챈다. 인정과 포상을 나눠주는 일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에 가깝다.

(208쪽) 의사들에게 간호사들과 한 공간에서 같이 교육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면 십중팔구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죠. 마찬가지로 간호사들에게서도 의사들과 같은 강의실에서 함께 배운 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223쪽) 숫자에 집중하는 일이 당신이 하는 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생각거리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저자들은 “모두가 성공하고 발전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두사람의 공통된 관심사”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CEO입니다. CEO가 아닌 층층시하 윗사람들을 모시는 중간간부로서 어떻게 조직문화 변화를 주장할 것인지가 저의 고민입니다.

모든 것은 중용이 기본입니다. 양 측면이 있을 때에는 둘 다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한쪽을 강조하였다고 다른 한쪽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한쪽으로 기울었으니 다른 한쪽에 조금 더 신경을 쓰자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합시다"라는 말은 수학공부를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 동안 수학공부에 치중하느라 영어공부가 부족했으니 영어를 보충하여 균형을 잡자는 말입니다. 영어만 하고 수학을 안 하면 대학에 못 갑니다.

양과 질을 따질 때만도 그렇습니다. 어떤 CEO가 "양보다 질이 중요합니다. 지금부터 질중심 경영을 하겠습니다"고 말한다면 양을 줄여가며 질을 올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양을 유지하면서, 혹은 최소한만 줄이면서 질을 올리는 방안을 고민해보다는 제안을 그렇게 말한 것 뿐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 중심'이라는 말은 환자만 생각하고 직원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직원 중심'이라는 말은 직원만 생각하고 환자는 무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환자 중심'을 잘 못 이해했습니다. 중용을 찾을 때라고 봅니다.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12-11. 애독자 편지]

선생님께서 매일 정성껏 보내주시는 EndoTODAY는 specialist라도 generalist의 마인드를 잊지 않아야 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내과의사'의 기본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됩니다. 곁들여 소개되는 기생충 이야기나 의료환경, 교육에 대한 내용 또한 소화기 전공이 아닌 제게는 무척 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3일짜리 교육 코스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 주제 중 'patient experience'가 있었는데, 선생님 말씀과 상통하여 공유드리고 싶습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patient experience, patient first (환자우선주의 또는 환자중심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를 강조하는 병원입니다. 강사가 말하기를......

Patient experience는 patient satisfaction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Patient first란 (1) Safe care, (2) High quality care, (3) Patient satisfaction, (4) High-value care 4가지 요소를 아울러 말한다. 우선 순위에서는 환자 안전과 high quality care가 환자만족보다 위다. 예를 들면 당뇨환자가 케익을 달라고 할 때 그것을 제공하면 장기적 관점에서 '환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 아니다. 환자의 만족을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케익을 주지 않는 것이 patient first의 올바른 실천이다. (이 부분을 듣다가 선생님 메일의 내용이 생각나서 귀에 확 들어오더군요.^^)

한가지 더. 미국에도 HCAHPS (Hospital Consumer Assessment of Healthcare Providers and Systems) Survey 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NCSI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Cleveland Clinic은 patient satisfaction의 척도로 HCAHPS 점수를 높게 받으려고 애쓰지는 않는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런 점수에 집중하는 것은 오로지 시험만 대비한 교육과 같다고 비유하였습니다.

선생님의 글과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환자우선' 또는 '환자만족'의 진정한 의미와 정의를 고민하였습니다. 이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실천해야만 진정한 환자우선의 진료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4-12-12. 이준행 답변]

좋은 말씀입니다. 환자 만족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 안개처럼 허망한 것입니다. 이보다는 patient safety와 high quality care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환자 중심'을 강조해야 합니다. NCSI처럼 작위적이고 가식적인 지표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근간으로 하면서 환자를 중심에 둔 safe and high quality care를 추구해야 합니다. '환자 만족'은 safe and high quality care에 따르는 종속변수일 뿐입니다. 종속변수는 주된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클리브랜드에서 보내주신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2014-12-7. 이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