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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1. 중앙일보] 최승호 시인 "내 시가 출제됐는데, 나도 모두 틀렸다"
'모의수능에 단골로 등장하는 작가' 문학교육에 쓴소리
최승호(55·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사진) 시인이 “내가 쓴 시가 나온 대입 문제를 풀어 봤는데 작가인 내가 모두 틀렸다”고 18일 말했다. 그가 풀어 본 문제는 2004년 출제된 수능 모의고사 문제였다. 최씨의 작품 ‘북어’ ‘아마존 수족관’ ‘대설주의보’ 등은 수능 모의고사 등에 단골로 출제돼 왔다. 그는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진짜 작가가 모른다면 누가 아는 건지 참 미스터리”라며 쓴소리를 했다. 최 시인은 올 8월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국어교사 400명을 대상으로 ‘시의 이해’를 강의했다. 이 자리에서 수능 시험과 고교 시 교육에 대해 직격탄을 날려 화제를 모은 그를 만났다.
- 자신이 쓴 시가 나온 문제를 틀린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언젠가부터 내 시가 교과서나 각종 수능 모의고사에서 나오고 있다더라. 그런데 나는 다 틀린다. 그래서 지금은 안 풀어 본다. 시를 몸에 비유해 보자. 시의 이미지는 살이고 리듬은 피요, 의미는 뼈다. 그런데 수능 시험은 학생들에게 살과 피는 빼고 숨겨진 뼈만 보라는 것이다. 그러니 틀리는 게 아닌가 싶다.”
- 무슨 말인지.
“예를 들어 내가 쓴 ‘너구리, 너 구려. 너 구린 거 알아’라는 시를 보자. 이게 모국어의 맛과 멋이다. 그런데 이 시의 주제가 뭐냐. 시의 사조(思潮)가 뭐냐. 시인은 어느 동인 출신이냐 묻는 게 수능 시험이다. 그런 가르침은 ‘가래침’ 같은 거다."
- 시인의 시 ‘북어’에 대해 고교 참고서는 ‘시인은 부당한 독재 권력에 대해 한마디 비판도 못 하는 굴종의 삶을 비판한다’고 풀이했다. 이건 맞나.
"그것 봐, 또 한정한다. 1979년 사북에서 전두환 정권 계엄령이 내려졌을 때 쓴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시는 죽음의 탐구로 볼 수도 있다. 작품은 프리즘과 같아서 눈 밝은 독자를 만나면 분광하며 스펙트럼을 일으킨다. 이런 해석은 노을을 보고 허무·열정의 이중성을 느끼는 사람에게 ‘빛의 산란’이 정답이라고 못 박는 꼴이다.”
- 객관식 시험이라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사람 사이의 대화나 교류가 일어나는 곳은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다. 그런 골짜기에서 나오는 메아리가 중요하다. ‘나는 이 산꼭대기에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만 저쪽에도 또 나름의 산맥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산과 산 사이에 골짜기가 생겨난다. 오지선다 시험은 골짜기를, 골짜기 사이에서 나오는 메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 현행 교육의 문제가 뭐라고 보는가.
“요즘 국회가 하는 일을 보자. 골짜기가 없다. ‘사이가 좋다’는 말처럼 사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이가 없는 거다. 여당과 야당, 중앙과 지방이 대립하는 세종시 문제도 그런 거 아닌가. 참 답답하다.”
- 그렇지만 수능은 15년이 넘은 시험이고, 아주 엄밀한 과정을 거쳐 출제된다. 이의 신청을 해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 두고 싶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정답이 어떻게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바보라서 모르는 건지…. 그렇지만 문제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거 같다. 나는 감정과 예술의 자리에서 얘기하고, 수능은 이론과 논리의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 그럼 시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웃는 것, 안목을 높여 주는 것이다. 더 좋은 작품을 감상해 나갈 수 있는 능력, 그래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주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다.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지금 여기 경험의 총체이니 그 경험을 최대한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이면 좋겠다. 어린이가 덜 자란 어른인 게 아니라 어른이 계속 자라나는 어린이일 뿐이다.”
- 학생들도 시를 쉽게 쓸 수 있나.
“시인은 언어의 요리사고 작품은 음식이다. 독자는 미식가고, 맛을 음미하면 된다. 나는 쉽게 언어를 물감처럼, 음표처럼 사용한다. 시 ‘숫소’는 증기기관차처럼 콧김을 뿜는 수소가 빼빼 마른 백정에게 맞아 쓰러지는 얘기다. 의미에 연연하지 말고 더 많은 작품을 즉물적으로 감상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누구든지 쓸 수 있다.”
◆최승호 시인은=1983년 출간된 첫 시집 『대설주의보』 이후 『세속도시의 즐거움』 『그로테스크』 『고비』 등 문제작들을 내놓으며 오늘의 작가상과 김수영문학상·이산문학상·현대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9-11-27. 중알일보] [반론] 시인이 뿔났다고? 김중신
시인이 뿔났다. 몇 년 전엔 신경림 시인이 자신이 쓴 시에 대한 문제를 풀지 못해 뿔이 났는데, 이번에는 최승호 시인이 뿔이 났다. 그것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오죽하면 문학교육의 가르침을 ‘가래침’이라고 했을까.
최 시인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내가 쓴 시가 나온 문제를 풀어 봤는데 모두 틀렸다”라고 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진짜 작가가 모른다면 누가 아는 건지 참 미스터리”라고 개탄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 시에 대한 문제를 못 풀었다고 문학교육의 가르침을 ‘가래침’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섣부르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문제만 풀고 있지는 않다. 선생님들은 시에 담긴 내밀한 의미를 학생들에게 울림으로 전하고자 하고, 학생들은 이를 통해 삶의 의미 혹은 시대적 현실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최 시인의 ‘북어’를 가르칠 때는 하다못해 꼬챙이에 꽂힌 북어 사진이라도 보여줄 것이고, 학생들은 꿰어진 북어가 던지는 말을 떠올리며 엄혹했던 1980년대를, 혹은 죽음의 탐구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최 시인이 개탄해 마지않은 그 시험 문제는 문학 수업의 아주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수능 역사 15년 동안에 최 시인이 비판한 문항, 즉 ‘시의 사조(思潮)가 뭐냐. 시인은 어느 동인 출신이냐’고 묻는 문제는 단 한 문항도 출제된 적이 없다. 5지선다형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수능에서는 문학 작품에 관한 단순 지식이 아니라 작품 이해 능력을 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필자는 2000년 수능시험 본고사와 올해 6월 수능 모의고사의 언어영역 출제위원장으로 각각 일한 경험이 있다).
물론 시 작품을 객관식 시험으로 출제하여 난해한 문제 풀이의 대상이 되게 만들었다는 언론의 비판은 뼈아프다. 문학교육이 읽고 쓰는 것 자체를 즐기게 해줘야 한다는 지적도 옳다. 하지만 느끼고 즐기기 위해서는 알고 따져 봐야 한다. 알고 따지는 활동은 시 감상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훈련이다. 히딩크 감독의 즐기는 축구도 소위 ‘공포의 빽빽이’라고 하는 셔틀 런(shuttle run)으로 선수들 입에서 단내가 나게 할 정도의 체력 훈련을 시켰을 때 가능했다. 객관식 문제 풀이가 고통스럽긴 하지만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 능력을 기르는 데 필요한, 알고 따지는 능력을 키운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최 시인이 자신이 쓴 시의 의도를 자신이 모른다면 ‘누가 아는 건지 참 미스터리’라고 지적한 것도 짚어 봐야 한다. 시를 가르칠 때 시인의 의도를 추리해 보는 것은 시의 의미를 좀 더 분명히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이 과정에서 시인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추리될 수도 있다. 그래도 그것은 오독(誤讀)이 아니다. 시인이 미처 의도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의미가 ‘눈 밝은 독자’에 의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쓴 시에 대한 문제를 틀렸다고 해서 ‘문학교육은 가래침’이라고 한 것은 너무 했다. 오늘도 교단에서 눈 밝은 독자를 기르려고 애를 쓰는 수많은 국어 선생님들에게 내뱉는 가래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어 선생님들이 뿔날 노릇이다.
김중신 국어교육학회 회장 수원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