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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 저널이 아니라구요?]

의대교수의 역할은 교육, 연구, 진료라고 합니다. 순서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저는 교육이 맨 앞에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는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가르치기는 싫고 '교수' 타이틀은 갖고 싶다면 그는 욕심쟁이입니다. "가르치지 않는 교수는 없다" 혹은 "없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므로 자세히 쓰지 않겠습니다. 의대 교수도 예외는 아닙니다. 진료를 핑계로 교육에서 빠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연구(또는 공부)도 중요합니다. 대학 교수라는 직업이 생기게 된 역사적인 배경도 연구(또는 공부)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연구(또는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 안정적으로 그 일을 하기 위하여 대학이라는 구조에 들어간 것입니다. 학생을 가르치고 그 반대급부로 자신의 연구(또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받았던 것입니다. 제가 '연구(또는 공부)'라고 표현한 것은 연구와 공부가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연구는 새로운 지식을 찾는 행위이고, 공부는 기존 지식을 내것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저는 공부가 연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공부 끝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지식이 나오는 게 바람직합니다. 뉴톤의 만유인력이 좋은 예입니다. 뉴톤은 엄청 공부를 많이 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공부는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대학 교수를 상대로 자꾸 시험을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연구는 그럭저럭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연구의 양과 질'이 '연구 논문의 양과 질'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실히 많은 연구를 해도 연구 논문은 적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연구 결과는 평생 하나만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 하나가 인류의 삶을 바꿔놓기도 합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확립했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까지 한번도 그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지동설은 이단이었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세상에 나온 지동설 이론이 인류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살아서는 무명의 학자였지만, 죽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연구에 대한 평가는 긴 호흡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노벨상만 보아도 10년 혹은 20년 전 연구가 수상 이유입니다.

최근에는 너무 짧은 호흡으로 연구자를 평가합니다. 의료계에서는 '최근 몇년간의 SCI 논문 갯수, impact factor 점수의 합’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쓰입니다. 평가받는 입장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SCI 논문 숫자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10년에 한번 좋은 연구 논문을 내는 사람은 무조건 짤립니다. 5년에 한번도 아마 짤릴 것입니다. 3년에 한번도 불안합니다. 짤리지 않고 좋은 대학의 교수직을 유지하려면 최소한 1-2년에 하나 정도의 논문을 내야 합니다. 그것도 자기 이름으로 내야 합니다. 함께 연구한 결과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SCI 논문으로 내야 합니다. SCI가 아닌 저널에 실린 논문은 논문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투명논문"). SCI 저널은 대부분 영어입니다. 우리말 논문은 논문도 아닌 것으로 취급됩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참고: 일본어에서 영어로 옮겨간 '언어 식민주의'... 한글 '하류 언어' 취급) 세종대왕이 땅속에서 통곡하고 계십니다.


관련 기사를 보시려면 그림을 클릭하세요.

조건에 맞게 논문을 낸다고 마냥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2년에 한번 영어 SCI 논문을 내도 꾸중받는 일이 많습니다. (1) SCI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왕족에도 성골과 진골이 있는 것처럼 SCI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그냥 SCI가 있고 SCI-E가 있습니다. 족보는 없습니다. 그냥 어떤 서양 출판사가 정해준 것입니다. 여하튼 SCI-E에 논문을 내면 뭔가 급이 낮은 사람처럼 취급받습니다. 우리나라 저널은 대부분 SCI는 물론 SCI-E에도 끼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저널에 우리 말로 논문을 실으면 뭔가 수준 낮은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3류 혹은 4류 연구자로 간주되는 분위기입니다 (저는 우리 말로 우리나라 저널에 실은 논문이 많은 4류 연구자입니다). 기분이 더럽습니다. (2) SCI core도 impact factor에 따라 대접이 다릅니다. 오늘 찾아보니 Nature는 42점, Science는 31점,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은 54점입니다. 이런데 논문을 내면 영웅이 됩니다. 저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어논문을 쓰기는 합니다. 목표는 Endoscopy입니다. 5점 짜리지요. Endoscopy지에 실어본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나버렸고, 이후로는 투고 즉시 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다지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5점짜리로는 어짜피 칭찬받기도 어렵습니다. 요새는 10점은 되어야 고개를 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impact factor에 따라 상도 받고 연구비도 받습니다. Impact factor 당 얼마씩 연구비를 준다니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연구가 무슨 고스톱입니까? 정부 연구비도 이렇게 주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Matching fund라고 합니다. 심사고 뭐고 다 필요없습니다. Impact factor 높으면 만사 OK입니다. (3) SCI 논문 숫자도 많고 impact factor도 높게 받았다고 다 끝난 것도 아닙니다. 내가 잘해도 남이 더 잘하면 꾸중을 듣게 됩니다. 상대평가란 말입니다. 과거에는 1년에 SCI 논문 하나면 칭찬을 받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꾸중받기 쉽습니다. 제가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승진할 때에는 4년에 SCI 논문 2개가 기준이었습니다. 요즘은 4년에 SCI 논문 2개라고 말하면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조직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요컨데 참 엉터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발을 빼기로 했습니다. SCI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Impact factor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짜피 교수 승진도 했겠다, 조금 한가하게 살아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이 있습니다.

(1) 내적요인입니다. 환자를 보면 자꾸 궁금한 것이 생깁니다. 자신의 궁금증은 자신이 연구하여 해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점짜리 SCI에 실을 수 있는 주제는 아닙니다. 잘 해야 1, 2점짜리 SCI-E 정도의 궁금증일 뿐입니다. 남들이 허접한 주제라고 생각하는 그런 궁금증입니다. 잘 되면 10점은 나와야 좋은 주제입니다. 잘 되어도 2점이라면 허접한 주제로 간주됩니다. 이런 주제로는 연구비를 딸 수 없습니다. 요즘 그런 허접한 연구를 한두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요한 연구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허접하다고 합니다.

(2) 외적요인입니다. 논문 발표를 하지 않으면 바보취급을 하여 참기 어렵습니다. 저는 대학교수입니다. 자존심 문제입니다. 크고 작은 여러 모임에서 논문 통계를 개인별로 보여주는 통에 자꾸 창피한 일이 생깁니다. 창피해야 할 일도 아닌데 자꾸 창피해집니다. 꾹 참고 논문 한두개 쓰는 편이 낫겠다 싶습니다.

제가 연구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쪽입니다. 다만 엉터리 평가 시스템으로부터 발을 빼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을 뿐입니다. 내맘 같지는 않지만, 꾹 참고 1년에 2점짜리 SCI 하나씩 쓰는 것이 가장 속편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1년에 2점, 그리고 끝... 여하튼 고민입니다.

제가 3월 1일 일요일 새벽에 이런 넉두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SCI-E 인 줄 알았던 어떤 논문이 SCI-E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종설입니다). 몇 년 전 제가 그 저널에 기고했을 때에는 분명 SCI-E였습니다 (한국인 위암의 특성 - 조기위암 증가를 중심으로). 회사의 SCI 통계에도 포함되었고, 연구 격려금도 받았습니다. 분명 SCI-E였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얼마 전에 짤렸다고 합니다. 이런...


(PDF 3.1M)

(SCI-E였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짤린) 그 저널로부터 투고요청을 받았을 때에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저는 first author였고 투고 요청은 corresponding author가 받았습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퀄리티혁신실 차장은 당연직 낙상위원회 위원장의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년간 제가 낙상위원회를 꾸려오면서 답답하게 생각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낙상 예방을 위하여 참고할 좋은 우리말 자료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차에 마침 SCI-E 저널로부터 낙상에 대한 투고요청을 받고 기쁜마음으로 "이번 기회에 내가 좋은 자료를 만들어보자. 수년간의 낙상 실무 경험이 녹아들어간 실용적인 종설을 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연구 업적으로도 인정되는 SCI-E 저널이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하여 근사하게 출판했습니다.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읽어볼만한 ‘낙상’ 종설이 나왔구나. 남도 좋고 나도 좋고… 그런데 이게 웬 말입니다. SCI-E가 아니라니… 며칠간 우울했습니다.

가까스로 정신으로 차리고 되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반성하였습니다. 그간 제가 했던 말은 진심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SCI 갯수와 impact factor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던 것은 다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솝 우화 '늑대와 신포도’의 늑대였습니다. 근사한 SCI 논문을 안 썼던 것이 아니라 못 썼던 것입니다. 제가 쓰지 못한 논문을 남들이 썼을 때 시샘했던 것입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서 시샘했던 것입니다. 어짜피 제가 먹을 수 없는 포도를 신포도라고 매도했던 것입니다. 사실 저도 좀 더 많은 SCI, 좀 더 높은 impact factor를 갖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제 마음이 그랬던 모양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버려야겠습니다. 헛된 욕심을 버려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다짐해봅니다. SCI인지 아닌지, impact factor가 높은지 낮은지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고, 환자들에게도 필요한 연구를 계속하겠습니다. 그 결과는 알맞은 저널에 적절한 언어의 질 좋은 논문으로 발표하겠습니다. 우리말로 발표하는 것이 적당한 논문도 꾸준히 시도하겠습니다 (적당한 우리말 저널이 거의 없어서 고민입니다. 거의 영어로 바뀌었습니다). 여하튼 그게 제 목표고 여러분과의 약속입니다.

2015. 3. 1.

(신)포도를 시샘했던 사나운 늑대 이준행 씀.


[2015-3-4. 애독자 편지]

선생님께서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실 줄이야... 저도 작년부터 비슷한 고민이 있습니다....

형제인 서울대 물리학과 김대식 교수와 경북대 로스쿨 김두식 교수의 대담집인 "공부논쟁"이란 책이 작년에 있었습니다. 서로 판이하게 다른 두 형제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 중 이런 이야기가 있더군요. "교수 중엔 세 부류가 있다. 1) 많이 가르쳐주지만 엄청 일 시키면서 부려먹는 교수, 2) 부려먹지 않지만 가르쳐주는게 없는 교수, 3) 엄청 일 시키면서 부려먹으면서도 가르쳐주는게 없는 교수."

근데, 4) 부려먹지 않으면서 많이 가르쳐주는 교수? 이런 부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전 어느 부류에 속할까요? 별 고민할 것도 없이 2)라고 생각했습니다. 3)이 아닌게 어디야... 그리고 1)이 2)보다 나을게 없어...라고 자위해보지만, 교수로서의 제 자질이 한참 모자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구를 위한 연구... 제일 하기 싫은 일입니다. 헛힘쓰지 말자라는 것이 제 인생의 모토인데, 어쩔 수 없이 헛힘쓰는 일이 자꾸 발생합니다. 그러다보니 무리하게 되고... (논문 조작은 아니고, 연구를 위한 연구는 정말 하고 싶은 연구에 비해 돈이 많이 들더군요... 연구를 위한 힘을 쓰는게 아니라 돈 줄 확보하는데 힘을 씁니다).

위 책에 그런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자연계 교수는 "중소기업 사장"과 같다. 그 이유는 매달 직원 (대학원생, 연구원) 월급, 재료비 수급 맞추는데 온 신경을 쓰고, 연구 자체에는 신경쓸 틈이 없다."

저도 요즘 제일 고민이 예산 지출 맞추는 일입니다.... 교육, 연구, 진료는 알아서 굴러가고, 정작 관심은 굴러가는데 펑크 안나게 조절하는... 원래 의대 교수도 이게 본업일까요? 원래 그런건데, 새삼 제가 의문을 제기하는걸까요?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 하는데, 이건 싫다고 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신도들이랑 회식이나 신경쓰는건 중이 정말 할 일이 아닌 것 같고.. 이래저래 고민을 드렸습니다.


[2015-3-4. 애독자 편지]

뭐, 이렇게 까지 심한 자기성찰을 하시나요.

가랑잎에 옷이 적듯이 선생님의 엔도노트를 매일 보면서 큰 도움을 받고있습니다. 환자를 볼 때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한 논의와 여기서 얻어지는 합일점.

이러한 점은 SCI 저널과는 전혀 다른 영역의 소통수단이고 가치로 따지자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 바른 내시경 연구소 소장 이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