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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의 카르텔] - 終
독일의 에른스트 푀펠과 베아트리체 바그너가 지은 "노력 중독"을 읽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에 관한 고찰"이라는 거창한 부제가 붙어 있군요. Chapter 제목은 이렇습니다. 지식 중독, 속도 중독, 편견, 친구 중독, 완벽에의 강박, 전문성에 대한 맹신, 독서 중독, 인간. 이 중에서 '전문성에 대한 맹신'에 나온 한 부분을 그대로 옮깁니다. 필요하고 중요한 연구라고 좋은 저널에 실리고 인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위 코드가 맞는 연구만 실린다는 것이지요. Impact factor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란 없다.
출판물의 범람이 얼마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지는 내 연구 경험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두뇌 연구 분야의 경우 매년 10만 건 가량의 학술물이 출간된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든 관련 자료를 읽어내고 다른 학자들의 학문적 성취를 인지하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아주 부지런하다면 한 해에 100여편의 학술논문은 읽을 수 있을 것이고, 1000여 건의 논문을 대략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해도 겨우 1 퍼센트 정도밖에 읽을 수 없으며, 대부분은 그나마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놓친 99퍼센터의 학술자료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읽지 못하고 내팽개쳐 둔 논문 더미 속에 정말로 중요한 지식이 숨어 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일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여기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중요한 연구 작업을 합의한 연구자들의 자체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한다. 마치 쭉정이들 사이에서 밀알을 가려내듯 자연스럽게 취사선택의 과정을 거쳐 필요한 학술자료를 찾아내는 것이다. 뛰어난 학술자료를 누군가가 읽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점점 더 알려지고 이에 반해 질 나쁜 학술작업은 스스로 도태되는 식이다. 하지만 이때도 두뇌의 한게가 작용한다. 이 책에서 여러 번 확인한 것처럼 우리의 두뇌가 항상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이라는 것도 개입된다는 말이다.
목표는 언제나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학자의 목표는 한편으로는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를 심화시키고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고매한 이상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작업의 중요성을 인정받거나 적어도 존재 여부를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이는 개인적 목표다. 게다가 자신이 속한 학술단체나 공동체의 입장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인용의 카르텔이 형성되기도 한다. 즉 당신이 나를 인용해주면 나도 내 책에 당신의 연구를 인용해주겠다는 일종의 상호 묵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기 집단에 속하지 않은 학자들은 멀리하고 자기들끼리 서로 상부상조하는 일종의 폐쇄적인 학술공동체가 생겨난다. 이러한 카르첼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불행히도 인용되지 못하고 학술자료의 홍수 속에서 쓸쓸히 사라져간다.
정치적 결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면 이러한 학술계의 인용 카르텔은 외부인의 눈에는 전혀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연구자들에게 연구 결과의 질이나 내용보다 인맥이 더 중요하다는 그릇된 환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그러다 보면 다른 연구자들의 작업에 우호적이지 않은 성질 괴팍한 학자의 연구는 중요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무시되고 잊힐 수도 있다. 결국 이는 학문의 세계에서도 자신을 팔아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연구 능력은 기껏해야 평균 이하이면서도 가장 목청 높여 대중을 모으고 최상의 마케팅 전략으로 적합한 인맥을 찾아 아부하는 사람이 종종 가장 중요한 학자인 양 행세하기도 한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고문 역할을 맡은 전문가를 보면 그렇다. 그런 종류의 어리석음이 정치적 결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다. 그에 맞는 예들은 다음과 같다.
© 일원내시경교실 바른내시경연구소 이준행. EndoTODAY Endoscopy Learning Center. Jun Haeng Lee. (2014-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