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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S 방역대장(2015/6/28 - 2015/7/17)을 마치며]

2015년 여름 삼성서울병원은 중동호흡기증후군 (MERS) 사태를 맞았습니다. 첫 환자를 진단한 보람은 잠깐이었고, 이후 많은 환자가 발생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달이상 병원이 폐쇄되면서 저는 평소보다 훨씬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힘들었고 중간부터 마지막까지 3주 동안은 몸이 힘들었습니다. 방역팀장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감염병과 방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내시경 의사가 방역팀장으로 일하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처음부터 관여한 것도 아니고, 중간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왜 락스를 써야 하는지, 왜 H2O2 훈증 멸균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답이 없는 이슈였던 것 같습니다. 적정 수준을 따지기보다는 어떻게든 메르스를 빨리 종식시켜야 하는 긴박한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락스로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락스 더하기 훈증'이라는 물량공세쪽으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방역 비전문가, 내시경 전문가인 저는 이러한 결정 과정에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결정된 내용을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manager 역할을 하였습니다. QPS 팀에서 여러분들과 일한 경험이 있다고 투입된 구원투수였으니까요.

주된 일은 방역할 장소를 선정하고, 팀을 짜서 순서대로 안전하게 락스 방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환자가 다 빠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일부 환자는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환자들을 다른 병동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이슈였습니다. 1,000 조각 퍼즐을 맞추는 일과 비슷했습니다. 전자오락 테트리스와 더 비슷했다고 할까요? 엄청난 속도로 빈 곳을 채워야 했으니까...

방역팀은 아침 9시와 오후 1시 30분에 병원 로비에 집결하였습니다. 할당된 곳을 찾아가 락스에 적신 페이퍼 타월로 모든 표면을 박박 닦아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수술복이나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N95 마스크를 착용하여 걸레질을 하는 것인지라 땀이 비처럼 흘러내렸습니다. 모든 부서의 직원들이 방역에 참가하였습니다. 교수님들은 수십명이 방역에 자원하셨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락스 방역이 끝나면 H2O2 (hydrogen peroxide) vapor 멸균을 했습니다. 이는 전문업체에 의뢰해서 진행하였습니다. 가스가 세지 않도록 sealing을 하고 로보트처럼 생긴 기계로 H2O2 vapor를 뿌린 후 한참 기다리면 멸균이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H2O2는 수기간 기다리면 저절로 물과 산소로 분해되기 때문에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HPV (hydrogen peroxide vapor) 멸균의 효과는 5 log 이상이었습니다. 훈증 후 책상이나 벽에서 샘플을 취하여 배양을 해 보니 균이 전혀 자라지 않았습니다 (로닥 플레이트 배양법).

2015년 7월 17일 오늘 뉴스를 보니 우리 병원의 부분 폐쇄가 곧 풀릴 모양입니다. 당장 정상화는 어렵겠지만, 조만간 외래와 검사가 가능해질 모양입니다. 드디어 우리 병원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모양입니다. 아니, 더 좋은 모습으로 변신할 때입니다.

그 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방역대장을 그만 두면서 어떤 후배 선생님께 보낸 편지와 답장]

XXX 선생님.

문득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어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XXX 선생님께 못다한 이야기가 있어 메일을 드립니다.

이번에 비전문가로서 방역대장을 하면서 장하준 교수님의 책 서문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전문가만이 올바른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입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보다 '건강한 상식을 가진 비전문가'가 더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는 지나친 전문가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전문가를 키워야 하고 그들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재 의료계에는 전문가가 너무 많고 generalist가 부족합니다. 각자 자기 주장만 할 뿐 균형된 판단을 내려주는 사람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건전한 상식을 가진 generalist를 발굴하여 그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는 것이 병원 발전의 밑거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여하튼 아래 인용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책 전체를 읽어보면 더 좋고... 우리말 번역도 있지만 영어가 훨씬 낫습니다. 한국사람이 쓴 영어라서 그리 어렵지도 않고... 사실 약간 이상한 일입니다. 한국사람이 영어로 글을 쓰고, 그 글을 다른 사람이 한국말로 번역하여 책으로 내다니... 사실 오래 전에도 이런 일은 있었습니다. 이어령씨 아시죠? 그 분이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일본말로 써서 일본에서 best seller가 되었습니다. 뒤늦게 한국말 번역본이 나왔답니다.

잘 지내세요.

지나친 전문가주의에 빠지지 않기를 권하면서... 이준행

"However, it is not necessary for us to understand all the technical details in order to understand what is going on in the world and exercise what I call an 'active economic citizenship' to demand the right courses of action from those in decision-making positions. After all, we make judgements about all sorts of other issues despite lacking technical expertise. We don't need to be expert epidemiologists in order to know that there should be hygiene standards in food factories, butchers and restaurants. Making judgements about economics is no different: once you know the key principles and basic facts, you can make some robust judgements without knowing the technical details. The only prerequisite is that you are willing to remove those rose-tinted glasses that neo-liberal ideologists like you to wear everyday. The glasses make the world look simple and pretty. But lift them off and stare at the clear harsh of reality…… While it may sound daunting for a non-specialist reader to be asked to question theories that are supported by the 'experts' and to suspect empirical facts that are accepted by most professionals in the field, you will find that this is actually a lot easier than it sounds, once you stop assuming that what most experts believe must be right."


[답장]

이준행 교수님

교수님께서는 비전문가라고 하시지만 , 저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셨고
맡은 일에 책임을 다 하고자 관련 공부도 하시고,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 다니시고
비전문가 (?) 특유의 균형 감각으로 그 자리에서 즉각 현명한 결정을 내리시는 모습들을 보며
제가 배운 점이 정말 많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마음 깊이 고.맙.습.니.다.
교수님의 제자라서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모쪼록 주말 편히 쉬십시오.
병동에서 또 뵙겠습니다 ^^

XXX 올림


[관련자료]

1) 중동호흡기증후군 (MERS) - 개인적 모니터링

2) [2015-7-19. 연합뉴스] 부분폐쇄 해제 앞둔 삼성서울병원…'긴장·기대 교차' - "'메르스 병원'으로 알려지면서 소독업체에서도 방문을 꺼려 의료진이 직접 나서 병원 구석구석을 소독하기도 했다."

© 前 SMC 메르스 방역대장, 現 삼성서울병원 내시경실장, 現 더불어 바른 내시경 연구소 소장 이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