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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oTODAY 내시경 교실


[진료와 연구의 균형에 대하여] - 終

[2014-4-16] 애독자로부터 책을 선물받았습니다.

애독자 한 분이 장문의 편지와 함께 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연구와 진료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진료'입니다. 진료는 소홀히하고 연구에 몰두하는 것을 저는 참을 수 없습니다. 현재 제게 주어진 진료 volume은 무척 많습니다. 이를 줄이지 않고서는 많은 연구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연구 성과는 자꾸 줄고 있습니다. 도리가 없습니다. '오는 환자 막지 말고 가는 환자 잡지 말자'가 제 모토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제가 발표한 연구 (이 명단에는 제가 자세히 읽어보지 못한 논문도 있습니다. 사죄합니다) 중 impact factor가 최고이고 인용도 많은 것은 fellow를 마치고 처음 시행한 연구입니다 (Am J Gastroenterol. 2003). 막말로 첫 끗발이 개 끗발입니다.그 이후로는 줄곳 하향곡선이지요. 요즘은 impact factor 1도 아슬아슬합니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진료'가 더 중요하니까요. 운도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제가 일하는 대학은 아직 impact factor는 따지지 않고 논문 숫자만 따집니다. 휴~~~ 적어도 인사 측면에서는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impact factor가 낮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연구만 합니다. 아직 임용되지 않은 분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요. 여하튼 저는 연구를 즐깁니다. Something new... 이런 것 상관하지 않습니다. Me too, me three... 이런 것 상관하지 않습니다. 제가 궁금하고 흥미가 있으면 그냥 합니다. 그러다보면 뭔가 의미를 찾게 됩니다. 적어도 나에게 혹은 적어도 내 환자에게... 그래서 성과는 그저 그렇습니다. 엄청 reject 됩니다. Impact factor로 본 성과도 형편없습니다.

사실 연구도 잘하고 진료도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둘 다 중간인 사람은 많습니다. 연구도 아주 잘 하면서 진료도 아주 잘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연구에 들이는 정성을 조금만 줄이면 훨씬 진료를 잘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입니다. 저는 연구 성과가 매우 좋고 진료에는 관심이 없는 교수에게는 환자를 의뢰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낸 분이 '환자'로 대접받을지 '연구 material'로 취급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연구는 잘 못해도 환자를 정성껏 진료해주는 의사를 선호합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제가 받은 메일을 요약해서 소개합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늘 보내주신 글을 읽으며,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을 보게 됩니다. 이전에 셰크맨 교수의 글을 소개하면서 주셨던 말씀은 저에게 큰 깨달음이 되었습니다.

의료 환경에 따라서 병원내 전공의/fellow의 역활도 변하는 것 같습니다. 진료뿐 아니라 연구에서의 역활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전공의/fellow의 능력이 얼마나 논문을 잘 쓰는가로 환산되어 평가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bedside에서 환자를 잘 보고, 해리슨 열심히 읽는 선배가 바람직한 의사의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impactor score 높은 저널에 논문을 발표한 전공의/fellow가 능력있다고 평가됩니다. 이런 변화가 옳은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저를 포함하여 요즘 전공의/fellow들은 교과서는 읽지 않고, 논문과 연관된 specific한 주제의 article만 읽습니다. 동료(혹은 선후배, 교수님)가 impact factor가 높은 저널에 논문이 실리면 그 논문을 읽어보진 않고, 그냥 부러워합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동료가 좋은 논문을 썼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그 내용을 공부하여 진료나 연구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교수님께서 보내주신 글을 읽으며, 저도 논문이라는 잣대로 선배나 후배를 평가한 것이 아닌지 부끄러웠습니다.

교수님. 저는 교수님께서 주시는 EndoTODAY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늘 무료로 좋은 교육을 받는 것같아 감사한 마음과 함께 죄송스런 마음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질문 상황이 생기면 용감하게 교수님께 질문하려고 합니다. 모르는 것은 창피한 일이지만, 그냥 넘어가는 것은 더 비겁한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교수님께 보내드리는 것으로 수업료를 내고 싶습니다. 오늘 우체국에서 교수님께 편지 형태로 책을 보냈습니다. 미하일 불가코프의 '젊은 의사의 수기'입니다. 처음 의사가 되어 진료를 시작하는 젊은 의사의 일기 형태의 소설입니다. 오래 전 의료 현실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하는 우리 의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려운 상황이나 마음이 울적할 때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애독자 의견 (2014-4-17)]

나라도 시끄러운 이 형국에, 어제 선생님께서 그렇게 연구하는 의사들을 비난하시는 내용을 읽게 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만약 선생님께서 진정으로 그렇게 연구하는 의사들을 생각하신다면, 학회위원장으로서 토요일 학회같은 것은 열지도 마셨어야 합니다. 바쁜 펠로우들을 토요일 학회에 참석하도록 설득한 저로서는 매우 기운 빠지는 일입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논문 쓰는 의사들을 깍아내리지 않으셔도, 이미 대부분의 소화기내시경의사들은 文을 버리고 武로 사는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즉, 평생 의사를 하면서 영어논문 1편 제대로 읽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하며 사는 의사들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사는 구조로 이미 형성되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저보다 멀리 보시는 안목이 있으시니, EndoToday가 본인의 공부량의 대부분인 국내의사를 양성하시는 분위기로 몰고 가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2014-4-17. 이준행 답변]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제가 어제 보내드린 메일은 개개인 연구자를 탓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불쾌하게 해 드린 점을 사과드립니다.

사실 제 의도는 연구에 정열을 다하는 개개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혀 아니었습니다. 연구만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생각하는 그런 우리나라 분위기가 안타까웠을 뿐입니다. 연구만을 강조하면 다른 모든 것이 희미해집니다. 효율성만 강조하면 안전은 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현재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임상의학이라는 것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의학 및 환자진료의 많은 측면 중 일부만 강조되는 분위기를 저는 안타까워합니다. 간혹은 시간을 내서 차분하고도 천천히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논문으로 출판될 수 없는 일 중에도 의미있는 일이 많을 것인데... 그런 부분이 희미해짐을 안타까워 할 뿐입니다. 예를 들면 안전한 진료, 질 높은 교육 같은 분야 말입니다. 저는 진료, 교육, 연구 등의 balance를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 balance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제안으로 이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제의 제 글이 연구에 열심인 선생님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린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2014-4-18. 애독자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hepatology 를 전공하지만 교수님의 endotoday에서 내시경적 지식 뿐만 아니라 항상 기본 정의에 충실한 말씀들에 감명받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주셨던 임상의사로써의 자세에 대해 저는 매우 공감하였고 그래서 수시로 읽어보기 위해서 프린트해 두었습니다. 저 역시 faculty의 길을 가고 싶어 연구 활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환자 진료보다 논문 실적이 우선시되는 현실은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느 순간에도 의사의 제 일순위는 환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의사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래서 연구활동 역시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환자를 위한 연구가 보다 많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주 우리나라에서 너무 슬픈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결국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것들이 터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 역시 환자를 생각하는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그 문제는 언젠가는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의견에 또 다른 의견을 가진 많은 선생님들이 있으시겠지만 저는 교수님의 말씀이 너무도 감사합니다


[2014-4-18. 이준행 답변]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진도 앞바다의 사고는 정말 슬픈 일입니다. 기본을 무시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의사의 기본은 진료입니다. 진료란 오래 한다고 저절로 잘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좋은 진료를 할 수 있는 의사는 만들어져야 합니다. 가르치고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연구에 치중한 나머지 좋은 의사 만들기에 소홀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연구도 중요합니다. 대학교수라면 마땅히 연구 능력이 훌륭해야 합니다. 그러나 연구만 잘하는 교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연구도 잘하고, 교육에도 관심이 있고,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발전에도 기여해야 합니다. 오직 연구만 할 것이면 왜 교수를 합니까? 연구소에 들어가면 그만이지.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연구독점(research monopoly)이 걱정입니다. 대학 평가도 연구 결과로 하고, 부서 평가도 연구 결과로 하고, 개인 평가도 연구 결과로 하고...... 심지어는 교수(이는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평가도 연구로 하는 어이 없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는 개인을 평가하는 여러 잣대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소한 잣대일 뿐입니다. 인격 같은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요? 교육 능력 같은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요?

기본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안전에서도 원리는 같습니다. 기본이 중요합니다. 날씨가 나빠졌다고 합시다. 그래서 비행기가 뜨지 못했습니다. 안전을 위하여 pilot가 이륙을 중단하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승객이 항의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입니다. 승객 안전을 위하여 기장이 내린 조처를 승객이 반대하는 꼴입니다. 이런 문화에서 안전사고는 계속됩니다. 이런 기본부터 고쳐야 합니다.

진료를 잘 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도 않고 진료 현장에 젊은 의사를 내몰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현실입니다. Pilot이 충분히 훈련받은 후 비행기에 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저부터 반성합니다.


[2014-4-23. 이준행]

대한 소화기학회에서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학회 참석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국민과 아픔을 함께하는 태도에 대하여 학회에서 메일을 보내온 점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차분히 되돌아 볼 때입니다. 우리의 system에 대하여. 부실한 system에 대하여. 안전무시태도에 대하여.


[2014-4-24. 애독자 의견]

저도 대학병원 교수로 있으면서 어떤 일에 우선해야 할 지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가정과 일에 대한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년퇴임하시는 교수님들은 대부분 가족에 대해 너무 소홀한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대학교수도 3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 진료에 충실한 선생님 - 학회일이나 논문보다는 진료에 열심히 임하시고, 병원내에서나 지역사회에서 진료에 대해 인정을 받으시고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물론 대외적으로 학회발표나 논문을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어 대외적으로 이름을 드높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학회에 충실한 성생님 - 논문이나 진료보다는 학회에서 발표하고 이름을 드높이는데 집중하는 교수님

3. 연구(논문작성)에 충실한 선생님 - 제가 아는 교수님은 하루종일 논문작성과 교정에만 매달리십니다... 결과는 엄청난 수의 SCI

대학교수는 수입에 연연하지 않는 직종이었는데, 인센티브등이 생기면서 수입에만 열심인 선생님들이 나타나는 것 같아 좀 우려스럽습니다. 저는 진료에 우선 충실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중인데 만만치 앖습니다.

교수님 매일 보내주시는 메일 잘 받고 있습니다. 진료에 관계된 내용도 잘 보고 있습니다. 인문학적인 측면에 대한 여러 주제를 좀 많이 다루어 주셨으면 합니다. 환절기에 감기조심하세요.


[2014-4-24. 이준행 답변]

저는 학회에만 충실한 선생님을 별로 좋게 보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진료와 연구(혹은 연구와 진료)에 충실하면서 학회 일은 조금 하는 정도가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학회일은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너무 많으면 진료와 연구(혹은 연구와 진료)가 큰 영향을 받습니다. 주객전도는 안 됩니다. 사실 제 자신을 돌아볼 때 학회 비중이 너무 높아 조금 줄이려 합니다.

학회에는 full time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진료를 함께하는 의과대학교수로서 학회일에 충분히 기여하기 어려운 분야가 많습니다. 특히 소화기내과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진료업무가 많기 때문에 어디선가 큰 희생이 없으면 학회활동을 잘 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대정부 업무, 대국민 업무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Full time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아직은 어림없습니다. 언젠가 나아지겠지만 ......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References]

1) EndoTODAY 연구 단상

© 일원내시경교실 바른내시경연구소 이준행. EndoTODAY Endoscopy Learning Center. Jun Haeng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