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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님]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에 출연한 서민 교수님


[2013-9. 레이디경향] 유쾌한 세상을 꿈꾸는 ‘기생충학 박사’ 서민 교수

연신 킥킥거리며 책장을 넘길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알찬 지식들로 가득 찬 과학책 한 권을 발견했다. 바로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기생충학 박사 서민 교수의 「서민의 기생충 열전」이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이름이나 외모부터 시작해 전공이며 직접 쓴 각종 칼럼들까지 뭔가 엉뚱하고 특별해 보였다. 무엇보다 곳곳에서 수줍지만 강력한 유머가 빛났다. 과연 무엇이 그의 인생을 이토록 독특한 무늬로 새겨 넣은 것인지, 궁금함을 가득 안고 마주 앉았다.

요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면 먼저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서민(47) 교수는 꽤 유명 인사가 됐다. 며칠 전에는 버스에서 연세가 있어 보이는 여자분이 타는 것을 보고 잠깐 치열한 내적 갈등을 겪다가 결국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더니 그분이 앉자마자 “아유, 얼마 전에 ‘아침마당’에 나왔던 기생충 교수님이시네”라고 해서 뜨끔했던 적도 있다. ‘만약에 양보도 안 하고 그냥 앉아 있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인터넷 같은 데 어른 공경 않는 파렴치한 서민 교수라고 소문이 났을 수도 있었겠다’ 싶어 괜히 안도의 한숨도 내쉬었단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으면 학생들 한 무리가 자신을 힐끔힐끔 돌아보면서 ‘기생충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들려서 괜히 기분이 찜찜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차라리 그냥 말이라도 걸어주면 좋을 텐데 어쩌다 ‘기생충’으로 불리게 됐는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알쏭달쏭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래도 이처럼 대중적인 인지도가 올라가게 된 데는 TV 프로그램 출연의 효과가 크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과 대중 강연을 거쳐 현재 MBC-TV ‘컬투의 베란다쇼’에 전문 패널로 고정 출연 중인 그는 막강한 입담을 자랑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그는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훨씬 오래전부터 신랄하면서도 발랄한, 골계와 숭고를 넘나드는 정치·사회 칼럼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경향신문을 비롯한 언론 매체에 고정적으로 시사 칼럼을 기고해왔고, 그중에서는 사회적으로 크게 화제가 된 것들도 있다. 또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책과 인터넷 사이트 연재 글을 통해 좀 더 많은 이들이 기생충에 대한 오해를 풀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기생충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중이다. 그의 말과 글은 언제나 유머러스하고 재기발랄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날카롭게 벼려진 도발이 있고, 술술 넘어가고 읽히다가도 어느 순간 묵직하게 머리를 울려오는 시원함이 있다.

대중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의 이러한 특별한 능력은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부터 싹튼 뿌리 깊은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못생긴 외모와 소심한 성격 탓에 외롭고 위축된 유소년기를 보냈던 서 교수는 남을 웃기고 인정받는 것을 자신의 인생 목표이자 생존 비결로 삼게 됐고, 이후 오랜 시간 그야말로 피나게 연습하고 눈물 나게 노력을 쏟아 부었다.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다른 사람의 우스갯소리를 받아 적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외우고, 유머를 연구하고,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매일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다시 써보고…. 그렇게 해서 한때는 세상이 괴롭기만 했던 아이는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냈고, 무엇보다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도 즐거움으로 물들일 수 있는 재주를 지닌 흥겨운 사람이 됐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다. 재미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또 행여나 예전의 자신처럼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의지가 돼주고 싶고, 지금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통해 수많은 이들과 손을 잡고 싶다. 열심히 공부한 의학 지식도 대중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할 생각이고, 기생충 박물관을 만드는 데도 좀 더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그리고 요즘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기꺼이 달려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한 번쯤은 상대방을 웃게 만들어주려 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기생충에 대한 편견이 없는 아이들과 ‘착한, 나쁜, 이상한 기생충’에 관해 논하는 자리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여기, 서민 교수와의 그 유쾌한 시간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함께한 대화를 그대로 옮겼다. 참고로 그는 보통 사람보다 약 2.4배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두서없이 이어진 질문에도 곧바로 튀어나오는 그의 대답은 무척이나 재미있어서 기자는 번번이 다음 질문을 잊어버리곤 했다.

여기까지 오시는 길에도 유명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불편을 체감하셨다면서요? 지하철 안에서 어머니와 통화하다가 언쟁이 생겨서 좀 짜증을 내다가 끊었는데, 바로 옆에 계시던 분이 “어머, 기생충 박사님?” 하고 말을 거시더군요. 황급히 최대한 상냥하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면서 “네, 제가 바로 기생충 박사예요”라고 했지만, 아마도 저의 버릇없고 못난 모습을 보시며 속으론 쯧쯧 혀를 차셨겠지요. 이제 정말 언제 어디서나 보는 눈이 있음을 명심하고 조심해야겠구나, 하고 다짐했죠. 한편으로는 제 과거를 돌아보면 참 많은 잘못을 하고 살았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하고 걱정도 되고 감춰뒀던 진실을 누가 폭로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고 불안하기도 하네요. 저도 이런 지경인데, 연예인을 비롯해 얼굴이 알려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모르겠어요. 다들 착하게 살았던 걸까요?

그럼 이 기회를 빌어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시죠. 미리 털고 가는 거예요. 글쎄요, 당장 생각이 안 나는데…. 아, “만약 내가 결혼하게 된다면 너랑 할게”라고 말했던 여자분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저는 평생 결혼을 안 할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던 건데, 결국 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실은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녔다는 소문이 진실인가 보군요. 놀랍게도 여자분들은 30대 정도가 되면 남자 얼굴을 크게 따지지 않는 것 같더군요(웃음). 사실 그 이유보다 제가 잘하는 게 있어요. 원래 남자들이 여자를 만나면 다들 어떻게든 손잡으려고 하고 안아보려고 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차피 결혼도 하지 않을 거고 혼자 살 거니까 괜한 욕망이 있으면 상대에게 휘둘리게 될 것 같아 벽을 보고 앉아 수련을 했어요. 가부좌 자세로 한두 시간씩 명상했는데 그 결과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됐고, 스킨십을 자제하자 여자분들이 ‘아, 이 남자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더 좋아하더라고요. 오히려 지금의 아내가 결혼하기 한 달쯤 전인가 “왜 손을 안 잡아?”라고 해서 제가 화들짝 놀라서 손을 잡았지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못 박아둔 이유가 뭔가요? 그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사랑에 큰 아픔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이건 좀 심각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오래전부터 자식을 낳고 싶지 않단 생각을 했고 결혼도 그 연장선상에서 결정한 거예요. 아마도 어린 시절 시달리고 학대받았던 기억 때문에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그런 이유에 덧붙여 젊을 때는 매일 사람들과 어울려서 놀고 술 마시고 돌아다니는 게 좋았어요. 제가 거대한 술조직을 거느리고 있었거든요. 뒤늦게 인기가 많아져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오늘은 이 사람, 내일은 저 사람 다 만나면서 매일같이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다녔어요. 그게 하도 즐거워서 결혼 결심을 하고 난 뒤에도 더 이상 그런 삶을 못 살게 될까 봐 슬프고 불안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나니 더 재미있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단호했던 비혼 결심을 꺾은 것도 대단한데, 결혼하고 나니 훨씬 재미있다고까지 느끼게 만든 걸 보면 부인께서 엄청난 분이신 것 같네요. 무엇보다 굉장한 미인이죠. 세상에 태어나서 본 사람 중 까무러칠 만큼 가장 예쁜 여자예요. 제 눈에만 그런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그래요. 처음 저희 집에 아내를 데려갔던 날, 어머니께서 무척 놀라시면서 “네가 이렇게 눈이 높은 줄 몰랐다”라고 하시더군요. 게다가 저의 확실한 ‘주인’이에요. 원래 제가 술을 마시면 잠을 자는 버릇이 있어서 보통 천안역이나 길바닥에서 깰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2년 전에 조기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고 나서 아내의 엄청난 분노와 혹독한 훈련에 힘입어 생활 습관을 많이 고쳤죠. 사실 저는 야생마처럼 제멋대로 하는 기질이 강하거든요. 아무래도 남자들은 일정 부분 그런 게 있죠. 야생마는 누군가 고삐를 단단히 쥐어줘야 하는데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 혹독하게 조련당하며 잘 살고 있는 셈이죠. 만약 아내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엉망으로 살고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아내가 저를 수렁에서 건져준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사람을 좋아하고 가까이 하는 건 분명 좋은 모습이지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자신을 내던졌던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아마도 어릴 때 너무 외로웠고 사랑받지 못했다는 데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것이었을까요? 나름의 거대한 조직을 만들게 된 건 아무래도 어린 시절 우울한 생활을 했던 영향이 있었겠죠. 자라면서 친구에게 많이 집착했어요. 그리고 제가 모임 같은 데 가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아이를 찾아내서 꼭 말을 하도록 시켜요. 언제나 소외돼 있는 사람들한테 관심이 가고요. 물론 어릴 때 상처가 커서 그렇겠죠. 어린 시절이 그 사람의 평생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의과대학 교수로서는 특이하게 논문이나 학술서가 아닌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내고, 또 블로그를 통해 네티즌들과 소통하거나 언론매체에도 적극적으로 기고하는 것도 사람들과 만나고 가까워지려는 시도로 해석해도 될까요? 색다른 점은 전공인 기생충학 관련 글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영역에서의 활약 또한 두드러진다는 건데요. 어릴 적에 너무 외롭게 지낸 탓에 남들에게 인정받는 걸 갈구하게 된 것 같아요. 원래는 말하는 데 워낙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글을 썼죠. 대학 입학 후 가입한 동아리에서 격주로 잡지를 발행했는데 거기에 가장 글을 많이 실은 사람이 바로 저예요. 글이 실린 뒤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즐겼어요. 지금 생각하면 엄청나게 유치했는데도 다들 재미있다고 해줬거든요. 저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최초의 경험이었죠. 그 뒤로도 ‘알라딘 서재’든, 경향신문이든 매체마다 참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글을 썼는데 일관된 마음은 그거였어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다’라는. 사실 방송은 글 쓰는 것만큼 즐겁지는 않아요.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되면서 실력 발휘를 못하거든요. 방송은 기회를 잘 잡아서 치고 들어가야 하는데 ‘수줍음’으로 살아온 제겐 영 어려운 일이에요. 다만, 평소 안 하는 효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섭외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있어요. 어머니께서 TV에 제가 나오면 무척 좋아하시거든요.

오랫동안 단단히 박혀 있던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기가 말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게다가 교수님께서 탈출 방안으로 삼은 ‘유머’라는 것이 운동처럼 몸으로 체득하거나 공식처럼 머리에 새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언제나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대로 움츠려 있지만 말고 나도 앞으로 나서보자’라는 생각에 재미를 추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제가 했던 노력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 정도예요. 수많은 수모와 시련을 견디며 오늘에 이른 거죠. 웃기려고 했던 말이 실패하면 얼마나 민망하고 죽고 싶은데요. 대학생 때는 성형외과 친구, 영상의학과 친구와 같이 유머를 연구했어요. 술자리에서는 ‘웃기는 사람만 안주 먹기’를 하고, 남들은 이성을 사귀기 위해 하는 미팅을 저는 제 유머 실력을 발휘하는 시험장으로 활용했어요. 그런 것들이 다 오늘날의 밑거름이 됐죠.

그렇다면 교수님의 장기이자 특징인 유머의 원천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유머의 기본은 자기를 낮추는 거죠. 다행히 저는 외모가 못생겨서 그 요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웃음). 게다가 저는 말을 어눌하게 하잖아요. 그러면서 할 말을 다 하면 그 자체로 웃기거든요.

스스로를 낮춰 즐거움을 이끌어내는 것이 좋은 유머라고 하던데, 교수님은 멋진 유머를 구사하고 계시군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우울하고 어두웠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생각이 녹아 있을지 안쓰러운 마음도 듭니다. 사실 굳이 꺼내놓지 않아도 될 이야기잖아요. 개인사나 가족사가 대중에게 공개되는 걸 가족들은 좀 꺼리긴 해요. 아픈 부분이기도 하고, 오해의 소지도 있고요. 제가 외모 콤플렉스와 관련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제 안에 있는 수줍음과 어두움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한 자기 변명적인 차원이었어요. 외모는 그 사람의 일부지만, 잠깐 스쳐가는 이들에게는 그 사람을 평가하는 전부일 수도 있죠. 또 한편으로는 못난 외모로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좋은 날은 꼭 온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기도 했어요. 제가 외모 탓만 하고 공부와 유머를 게을리했다면 제 삶은 지금보다 훨씬 재미없었을 것 같거든요. 지금도 ‘못생긴’ 젊은이들 혹은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제가 어릴 때 겪었던, 아니 그보다 더 심한 편견과 놀림에 시달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요. 물론 제가 지금 “노력하면 된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이 실제로 그들에게 이해되고 도움이 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해요. 그래도 그중 일부에게는 제 경험이 조금이나마 희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제 교수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만큼 많아졌고, 특히 기생충에 관해 재미있게 풀어쓴 글이나 시사와 기생충을 연관시켜 풍자한 칼럼에 열광하는 고정 독자들도 생겼어요. 오래전부터 자신처럼 외모 때문에 탄압받는 기생충이 편견을 깨고 사람들 곁으로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고 하셨는데, 이제 좀 더 관련된 일에 매진하셔야겠죠? 사실 기생충만큼 편견에 시달리는 존재도 없다고 봐요. 나이 든 세대들은 옛날에 기생충 검사했던 기억만 갖고 숱한 오해를 하고, 젊은 사람들은 기생충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혐오하고 두려워해요. 그런데 강의를 다녀보면 어린아이들은 기생충에 대한 선입견이 없고 오히려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순수한 호기심을 잃고 기생충뿐만 아니라 생물이나 과학과 관련된 흥미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가장 큰 이유는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직접 보지 못하니 공포감만 커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볼 수 있는 기생충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요. 꼭 기생충만을 좋아하라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생물에, 자연에, 과학에 흥미를 갖고 관심을 키우며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거죠. 그리고 과학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 나중에 과학자가 되지 않더라도 과학 관련 분야의 사안에 대해 심정적 지지라도 보낼 수 있게 되고, 또 그 사람 스스로에게도 균형적 사고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교수님의 ‘인정 욕구’ 중 하나이기도 한 글쓰기도 지속적으로 해나가실 건가요? 요즘 방송 출연이 활발해지시면서 교수님의 재기발랄하고 속 시원한 이야기를 담은 글을 못 보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요즘 구상하고 추진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는데, 사실 세간에 잘못된 지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 늘 안타까웠어요. 제가 종사하는 의학 분야만 해도 사람들의 관심은 높은데 잘못 알고 있는 게 많아서 답답할 때가 있어요. 저는 글쓰는 걸 좋아하니까 의학 분야에 있어 제대로 된 지식을 전파하고 싶어요. 요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친구와 매주 한 번, 두 시간씩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을 정리해 ‘잘못 알려진 육아’ 상식’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있는데, 이걸 책으로 내보려고 해요. 그 다음에는 감염내과, 정형외과, 암 관련 등 번호표 뽑고 대기하고 있는 일들이 수두룩하네요.

이젠 뭐 심심하거나 외롭다고 느낄 틈이 조금도 없겠네요. 한동안 인터뷰도 열심히 하고 적극적으로 제 이름을 알리려고 노력했어요.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고 유명해지려고요. 새삼 인기를 끌어보고 싶었던 건 아니고(웃음), 예전에 정재승 KAIST 교수가 지식 기부 콘서트 같은 걸 하시는 걸 보고 ‘참 멋지다, 부럽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도 참여해서 학생들과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이유가 제가 워낙 ‘듣보잡’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얼마 전 어느 고등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와서 갔는데 학생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열심히 듣더라고요. 매우 보람을 느꼈어요. 이제는 그래도 조금은 알려졌으니 열의는 있지만 찾아주는 사람이 없는 곳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심심할 틈이 전혀 없겠죠. 다만, 요즘 좀 바쁘게 지냈더니 아내가 혼을 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 방송을 시작한 후로 솔직히 가정을 약간은 소홀히 했거든요. 그나마 출연료를 아내 통장에 꼬박꼬박 송금하는 것으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네요(웃음).


[2013-9-13. 경향신문] 냉소하고 비꼬라, 직접적 비판보다 마음도 편하리니

지금 최고의 패러디 대가는 누구일까. 여러 고수들이 있겠지만 서민 단국대 교수(46·사진)를 꼽을 수 있다. 서민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과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블로그 활동을 통해 독자들을 쥐고 흔들었다. 올해에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조롱한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우익 논객 조갑제씨를 통일부 장관, ‘국정원 댓글녀’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상상하는 ‘납량특집 내각’ 등의 글로 화제를 모았다. 패러디란 원본에 기생하는 형식인데 서 교수의 전공이 기생충학이란 사실도 흥미로운 유사점이다. 서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모든 게 이명박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소재를 많이 제공했어요. 패러디의 전성기였죠.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같은 유행어도 남겼고, ‘유체이탈 화법’도 그렇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글을 쓰면 정말 재미있었어요."

서 교수는 이명박 정권 2년차였던 2009년부터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당시 서 교수의 왕성한 필력은 경향신문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서 교수는 2주에 한 번 칼럼을 쓰기로 돼 있는데, 한 번에 2~3개의 칼럼을 보낸 뒤 “좋은 걸로 골라 쓰시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서 교수는 “그때는 쓰고 싶은 게 막 생각났다”며 “쓰면서 희열을 느꼈고 반응이 좋아 행복했다”고 돌이켰다.

그의 경향신문 칼럼은 2011년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3년간 연재하다보니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블로그를 통해 글을 써왔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많이 뜸해졌다. 서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은 소재 제공을 거의 안 한다. 언론에 노출이 잘 안되고, 스스로 했다고 내세우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닌 서 교수는 “돌 한번 깨본 적 없는” 학생이었다. 밤늦게 술 마시다가 전경에게 잡혀간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도 그는 “강하게 결백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 교수 역시 당시 민주화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자신의 글쓰기가 “주야장천 냉소하고 비꼰다. 인간이 가져선 안될 감정에 호소한다”며 웃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반어적인 글쓰기 역시 사회에 효용이 있다고 믿는다.

"직접적으로 비판하면 마음이 불편하잖아요. 패러디, 반어는 한번 비트니까 마음놓고 웃으며 조롱할 수 있어요. 비판에 대한 죄책감을 희석시켜준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References]

1) EndoTODAY 기생충학

© 일원내시경교실 바른내시경연구소 이준행. EndoTODAY Endoscopy Learning Center. Lee Jun Ha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