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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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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담론]

MERS 때문에 모든 저녁 약속이 사라졌습니다. 모처럼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침 신영복의 담론을 집었습니다. 장별로 한 문장씩 모아보았습니다.

1장.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합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창조 공간이 되지 못합니다. 중심부보다 더 완고한 교조적 공간이 됩니다.

2장. 진실이 사실보다 더 정직한 세계인식입니다.

3장. 근대적 패러다임 중에서 가장 완고한 것이 인과론입니다. 사물을 원인과 결과 관계로 질서화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과관계가 현실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4장. “70%의 자리에 가라!” 자기 능력이 100이면 70의 역량을 요구하는 곳에 가는 것이 득위입니다. 반대로 70의 능력자가 100의 역량을 요구하는 자리에 가면 실위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부려서 하는 일이 자기 능력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과 자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5장. 북학의 반대는 남학이 아니라 북벌입니다... 조선을 북벌을 국시로하는 소중화의 나라로 교조화됩니다. 조선 시대의 이러한 상황에서 북학은 엄청난 이단이었습니다. 오랑캐를 배우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조선의 지배구조를 개혁하자는 주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경제주의적 발상이고 근본은 동의 논리입니다. 열린 사고가 못 됩니다.

6장.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라네.

7장. “너희들 창랑지수란 노래를 듣지 않았는가? 왜 어떤 물에는 깨끗한 갓끈이 들어오고, 어떤 물에는 불결한 발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는가?” 맹자의 결론은 단호합니다. “그것은 물, 자기가 자초한 것이다. 자기가 깨끗하면 어찌 발이 들어올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8장.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당당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과 반대로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오만한 사람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조합은 없습니다. 강한 사람한테 비굴하고 약한 사람한테 관용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9장. 장자의 반기계론은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입니다. 속도와 효율, 더 많은 소유와 소비라는 우리 시대의 집단적 허위의식에 대한 고발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인의예지라는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아야 한다는 민초들의 사유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지속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는 것이 자자의 탈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장. 묵자는 전쟁 방식의 부국강병이 결국은 패망으로 끝나는 흉물임을 역설합니다. 예로 든 것이 ‘양약’의 비유입니다. 1만 명에게 약을 썼는데 모두 다 죽고 3명만 효험을 보았다면 그것을 양약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당신은 그런 약을 부모에게 드리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이러한 현실의 궁극적 원인은 바로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묵자의 결론입니다. 따라서 근본적 해결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서로 차별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차별 없이 사랑할 때 평화로워진다는 것입니다.

11장. 오늘날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보면 법가의 원칙이 관철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정치,경제 사범은 ‘불법행위자’입니다. 반면에 절도, 강도와 같은 일반 사범은 ‘범죄인’이 됩니다. 엄청난 인식의 차이입니다. 한쪽은 그 사람의 행위만이 불법임에 반하여 다른 쪽은 인간 자체가 범죄인이 됩니다. 사법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중간정리. 알튀세르의 상호결정론을 소개합니다. 인-->과이면서 동시에 과-->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과론적 결정론에 쉽게 기울게 되는 것은 그것이 단순화된 모델이어서 쉽기 때문입니다.

12장. 무기징역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기만을 바라던 사형수가 막상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나서 자살하기도 합니다.

13장. 인생은 공부다.

14장. 그런데 노인들은 사람만 보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처지를 함께 봅니다. 사람을 그 처지와 떼어서 어떤 순순한 개인으로 보는 법이 없습니다.

15장. 위악이 약자의 의상이라고 한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입니다... 피아노 연주와 그 인간성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 남편의 생각입니다... 테러가 약자의 전쟁이라면, 전쟁은 강자의 테러입니다.

16장. 대상과 자기가 애정의 젖줄로 연결되거나 운명의 핏줄로 맺어짐 없이, 즉 대상과 필자의 혼연한 육화 없이 대상을 인식하고 서술할 수 있다는 환상, 이 환상이야말로 정보 문화와 저널리즘이 양산해 낸 허구입니다.... 관계 없이 인식 없다.

17장. 우리 사회에는 시혜와 자선 그리고 기부와 증여도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순수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선 도움받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배려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 자체로서는 영리 목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본축적으로 보조 축으로 역하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본은 나누지 않습니다. 자본축적이 자본의 운동법칙입니다... 사심없는 기부는 주로 김밥 할머니들이 합니다... 함께 맞는 비.

18장. 명상은 현재의 공간을 벗어나는 정식적 탈옥입니다.

19장. 명필은 오래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추사 글씨도 죽기 사흘 전에 쓴 봉은사의 [판전]을 최고로 칩니다. 최고로 치는 것은 어리숙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20장. “그래도 남미는 북미보다는 덜 비참합니다.” 남미는 콜럼버스 상륙 이후 약 1,600만 명이 살해됩니다. 마찬가지로 1,600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노예로 끌려옵니다. 그런데도 덜 비참하다니요... 북미에서는 원주민을 청소합니다. 개종, 혼혈 일절 없었습니다... 8천만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100만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21장. 자신의 인간적 정체성은 소비보다는 생산을 통하여 형성됩니다... 모든 주체들은 이제 ‘성과 주체’로 전락합니다.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질주합니다. 그림자를 추월해야 하는 가망 없는 질주입니다... 외적 지배기구가 없다는 사실이 언뜻 자유롭긴 하지만 더욱 더 부자유한 상태로 전락합니다. 이른바 자기 착취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부패 문제는 흔히 윤리 문제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부패의 근본 원인은 경쟁입니다... 산유국이란 석유를 생사하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그것은 생산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소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Emmanuel Todd에 의하면 미국은 어떠한 국제분쟁이나 전쟁도 문제의 최종적 해결에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쟁과 준 전쟁 상태를 지속시킴으로써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22장. 1623년 인조반정 이후로 노론 세력들은 지금까지 지배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 군사 정권에 이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보수 구조를 완성해 놓고 있습니다. 물론 배후에 외세의 압도적 지원을 업고 있는 것 역시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상 투쟁은 모든 개혁의 시작이고 끝입니다.

23장.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24장.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25장.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 석과불식은 “씨 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최고의 인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이유를 줄이면 자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2015-6-6. 경향신문] 돌풍과 소강 - 장 자끄 상뻬


로베르, 나는 너의 자유분망한 정신이 좋아.


[2015-6-6. 경향신문] 메르스는 돈병이다

조호연 논설위원이 쓰신 이 컬럼은 요점정리가 불가능합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뺄 곳이 없습니다. 몽땅 옮깁니다.

내내 궁금했다. 왜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검사를 거부했을까. 사태 초기이니 검사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동반한 의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이틀간 코미디가 연출됐다. “메르스 없는 바레인 여행자니 검사할 필요 없다”와 “검사해서 안 나오면 책임질 거냐”는 엉뚱한 대응과 “검사 안 해 주면 고위층에 알리겠다”는 협박이 오갔다. 이 틈을 타 메르스는 한국에 연착륙했다. 첫번째 ‘메르스 골든타임’이 이렇게 허망하게 날아갔다.

이번 재난의 서곡을 연 코미디에는 질본과 병원, 환자 가족이 등장한다. 관료의 소심성과 손톱만큼도 책임을 안 지려는 이기주의, 약자와 하부기관에 대한 오만과 갑질이 극적 요소다. 사명감 없는 관료가 법과 기준, 규정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며 그곳에 안주하는 데서 비롯되는 부조리극인 셈이다. 법에 상식이 규정돼 있지 않으면 상식을 배제하고, 기준에 재량권이 나와 있지 않으면 누가 뭐래도 벽창호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통상의 관료주의만으로 지역사회 전파 없이 병원 간 감염이라는 한계가 뚜렷한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뚫린 엄청난 부조리극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한 달도 안되는 기간에 환자가 150명을 넘어서고 수천명이 격리된 국가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감염병 교과서를 새로 쓰는 것이다. 전염병이 퍼지려면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 중동처럼 고온 건조한 한국의 6월 날씨와 인구 밀집은 필수 요인이다. 그러나 한국과 유사한 조건을 갖췄지만 메르스가 뚫지 못한 이웃나라들을 보면 한국만이 갖고 있는 배경이 있다고 봐야 한다.

"전염병의 확산은 바이러스의 속성뿐만 아니라, 그 나라 정부와 정치·사회적 속성에 기인한다”는 미국 브라운대 교수 케네스 메이어의 말(<감염병의 사회생태학>)에 그 단초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활성화 정책을 보자. 의학분야에서 소위 ‘돈 되는’ 임상 의학을 장려하고 예방 의학을 경시하고 있다. 보건 분야는 보건복지부 예산의 4%에 불과한데도 예산 깎을 일이 생기면 언제나 1순위로 꼽힌다. 평소 돈만 들어가고 수익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메르스 사태 같은 재난이 벌어지고 나서야 필요성을 느낄 뿐이다. 실용 학문을 우대하고 기초 학문을 푸대접하는 정책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니 적극 행정, 창의 행정은 언감생심이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기준이 2 m 이내면 거기서 단 1㎝만 벗어나도 밀접접촉 대상으로 적용하지 않게 된다. 메르스가 발생하지 않은 바레인 여행자는 메르스 검사를 하지 않는 기계적 대응밖에 하지 못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 질본이 역학조사를 벌여 ‘살균제가 폐를 손상시켰다’고 조사결과를 밝혔더니 고위층으로부터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질책이 쏟아졌다고 한다. 진실이더라도 정부가 곤란한 입장에 처한다면 배척하는 분위기 속에서 감염병 방어에 필수적인 선제적 대응이 나올 리 없다. 이렇게 감염병 전파의 토양이 형성되는 것이다.

정부 매뉴얼에 따르면 전염병 발생 시 최우선 과제는 국민의 안전이다. 초기에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으로 최초 전염병 발병자의 빠른 치료와 확산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사회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관료들을 예산과 규정으로 꽁꽁 얽어매 국민 안전과 관련된 사안에서도 재량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메르스에 약한 정부, 면역력이 없는 국가가 여기서 나온다.

정부 정책은 병원의 공공성 약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람보다 돈을 구하는 데 더 신경 쓰는 경영을 채택하도록 메르스 방어력을 떨어뜨렸다. 입원실은 늘리고 예방 의학실은 구색만 갖췄다. 응급실은 시장바닥으로 변해 감염의 주 무대가 됐다. 감염병 환자에 필수적인 음압격리 병상을 제대로 갖춘 민간병원은 거의 없다. 삼성서울병원마저 감염환자가 속출하는데도 선제적 대응을 주저하는 등 수익성에만 매달리다가 급기야 국민 보건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정도다.

메르스는 중동에서 호흡기 전염병이었지만 한국에 와서는 ‘돈병’ ‘경제병’이 되었다. 안전을 무시하다 수백명의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와 유사하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에서는 죄를 뒤집어씌울 세월호 선장 같은 대상이 없다. 온전히 박근혜 정권이 다 감당해야 한다. 아무리 변명과 핵심 흐리기, 유체이탈화법을 동원하더라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시간이 흐르면 메르스는 물러갈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전염병에 강한 체질로 바꾸지 않는 한 언제든 되돌아올 것이다. 해결책은 하나다. ‘경제병 정책’ 포기 선언을 하는 것이다.


[2015-6-20] 과잉진단

주말에 Gilbert Welch가 쓴 과잉진단을 읽었습니다. 메르스 기간에 우연히 평소에 가지 못했던 동료 교수의 방에 들러 빌려온 책입니다. 건강검진의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인지라 갑자기 흥미가 발동하였습니다.

늘 과잉진단의 문제를 고민하고 공부하는 저로서는 내용이 새로웠다기보다는 이처럼 체계적으로 많은 자료를 정리하여 알기 쉽게 쓸 수 있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저는 쉽게 생각합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하고 있지 않은데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들이 다 바보고 우리만 똑똑할 확률보다는 반대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가습기 세정제에 의하여 100명 넘게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화학약품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매년 전 국민이 이렇게 많은 검사를 받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잘못된 일일 가능성이 큽니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13쪽) 최근들어 의료계는 조기 진단의 부정적인 면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조기진단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심장병, 자폐증, 녹내장, 혈관이상, 골다공증 혹은 암에 가장 빨리 걸리는 비결은 선별검사를 받는 것이다.”

(59쪽) 진단의 역치를 낮추려는 움직임은 고혈압을 비롯해 여러 가지 흔한 질병에서 반복되어 나타났다... 그렇다면 컷오프를 설정하는 전문가들이 과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당뇨병 컷오프 설정위원회 의장은 아벤티스, BMS, 일라이 릴리, 글락스스미스클라인, 노바티스, 머크, 그리고 화이자의 유급 자문 위원이다. 이들 제약사들은 당뇨병 치료제를 만들고 있다. 최근 발간된 고혈압 가이드라인 저자 11명 가운데 9명에게는 고혈압 치료제를 만드는 회사들의 유급 자문 위원, 유급 강연자, 연구비 수혜자 등과 같이 돈과 관련된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콜레스테롤의 컷오프를 낮추는 데 관여한 9명의 전문가 중 8명은 콜레스테롤 약을 만드는 회사의 유급 자문 위원이었다. 그리고 골다공증 진단을 위한...

(104쪽) 디트로이트의 병리의사들은 사고로 죽은 남자들의 전립선을 조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대 젊은 남성들도 거의 10 퍼센트가 전립선 암을 가지고 있었다. 이 비율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늘어났다. 70대 남성들은 4분의 3 이상에서 전립선암이 발견되었다. 나이 많은 남자의 절반 이상이 전립선암에 걸리지만 겨우 3 퍼센트 정도만 그것으로 죽는다면 과잉 진단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잠재적 문제가 현실로 바뀌는 시점은 언제일까? 그건 바로 의사들이 작은 암을 조기에 찾아내려고 열심히 노력할 때다.

(131쪽) 전립선암에서는 사망률이 약간 증가했다가 약간 감소했다. 과잉 진단의 책임이 있는 선별검사가 그 경우에는 약간의 사망률 감소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전립선암 선별검사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함께 잠재되어 있다. 반면에 갑상선암 선별검사에는 부정적인 면만 있다. 과잉 진단은 많이 일어나는데 사망률의 감소는 없는 것이다.

(134쪽) 하지만 그들은 덫에 걸려 있다. 모든 종류의 힘, 즉 법적 책임, 환자의 권리, 경제적 이익 등과 같은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뒤엉키면서 의사들이 더 많은 조직검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흑색종 진단을 놓치면 엄청난 제재가 따르는 반면, 과잉 진단에 상응하는 규제는 없다.

(137쪽) 다른 어떤 암보다 폐암의 과잉 진단은 훨씬 위험하다. 폐의 일부를 잘라내는 폐암 수술은 엄청난 사망 위험을 수반한다... 폐암을 열심히 찾아내려는 노력은 정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브라이언 멀로니는 캐나다 수상을 10년 동안 지낸 사람이다. 2005년 그는 정기 검진을 받으로 의사를 찾아갔다. 검진의 한 종목으로 폐의 나선형 CT 촬영을 시행했다. 거기서 작지만 염려스러운 두 개의 혹이 발견되어 수술로 그것들을 제거했다. 그런데 수술 이후 드물지만 심각한 합병증인 췌장염이 발생했다. 그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그는 췌장염 합병증으로 인해 생긴 췌장 부근의 낭종을 수술하기 위해 또다시 한 달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는 폐암은 가진 적도 없었다. 조직검사 소견도 음성이었다. 그저 검진만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검진이 항상 좀 더 나은 건강 상태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147쪽) 지금까지 유방암만큼 선별 검사가 광범위하게 연구된 암은 없다... 이렇게 격렬한 토론과 철저한 과학적 연구가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유방 촬영술의 이익과 위험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다는 뜻이다.

(171쪽) 영국의 왕립일반의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오나 히드 박사는 선별검사를 받으라는 초청을 ‘기분 좋게 거절했다’고 말하다. 그녀는 자기 의견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체계적 문헌 고찰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10년 동안 해마다 선별 검사를 받는 2,000명의 여성 중 한 명이 유방암에 의한 사망을 피할 수 있는 반면, 10명의 건강한 여성이 유방암 과잉 진단을 박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잉 진단으로 6건의 추가적인 종양 절제술과 4건의 추가적인 유방 절제술이 시행되며, 200명의 여성들은 유방 사진 촬영에 이어지는 추가 검사로 인해 불안 등 심각한 정신적 위험을 겪는다.” 허드 박사는 앞으로 유방 촬영술을 받지 않겠다고 한 본인의 결정이 자신의 환자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정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194쪽) 일반적으로 말해서 환자들이 영상의학 검사에 대해 조금만 덜 열정적이면 오히려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전신 CT, 전신 MRI 등과 같은 전신 스캔 검사를 받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하는데, 이건 그야말로 우연종이 가득 든 판도라의 상사를 여는 일과 같다.

(300쪽) 의사들은 또 과학 논문들의 영향을 받는데, 따지고 보면 이 논문들 역시 그 연구비를 지원한 제조 회사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대부분의 의학 연구는 산업체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는다. 따라서 산업체는 연구의 방향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에 대해서 강력한 결정권을 지닌다. 이제 골다공증 치료제에 대한 연구가 노인들의 낙상 방지에 대한 연구보다 왜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06쪽) 나는 지금까지 어떤 검사를 의뢰했다고 해서 법정에 출두한 의사를 본 적이 없다... 만일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로 과잉 진단을 방지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법적 위험의 비대칭성, 즉 과잉 진단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진단이 미흡한 경우만 처벌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322쪽) 누군가 ‘고위험군에게 좋은 것은 저위험군에게도 좋은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단 그것으로 ‘더 많은 진단’을 위한 무대는 갖춰지는 셈이다.

(329쪽) 그리고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선별 검사 프로그램이 점점 더 많은 과잉 진단을 유발할수록 선별 검사의 인기가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어떤 질병에 대한 과잉 진단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 대상자들이 선별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정말 그 질병으로 확진된 환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해당 질병의 위험도에 대해 사람들의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결국 검사의 중요성만 점점 더 부각된다. 또한 더 많은 과잉 진단은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별 검사가 본인이나 주변 지인들의 생명을 구했다고 믿게 만드는데, 이런 믿음이 바로 선별 검사에 대한 더욱 강력한 자기 강화 요소로 작용한다. 과잉 진단된 환자들은 대부분 매우 양호한 경과를 보인다. 따라서 당사자들은 조기 진단이 자기 생명을 구한 걸로 쉽게 결론을 내린다는 점을 기억하라. 한번 이런 사이클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효과는 선별 검사를 촉진하는 다른 힘이 없어도 지속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에 이루어지는 검사들을 받지 않겠다고 하기가 몹시 어려워진다.

(333쪽 결론 제목) ‘진단을 덜 하면서 건강 추구하기’

(356쪽 역자 홍영준 후기) 특정 검사를 꼭 받아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잘 구분해주는 게 정말 올바른 의료인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과잉 진단으로 소송에 걸릴 일은 없지만 ‘미흡 진단’, 곧 꼭 해야 할 검사를 빠뜨렸다는 것은 의료 분쟁의 단골 소재가 되지 않았는가... ‘모든 조기 진단은 유익하다’는 전통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내가 속한 대한진단검사의학회 내에서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검사라는 의료 행위를 전문으로 수행하는 우리 과가 마치 과잉 진단을 조장하는 곳처럼 자칫 오해를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한다. 과잉 진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검사의 의의와 한계를 잘 아는 전문가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체외 진단 검사 분야에서 과잉 진단 문제가 이슈가 되면 될수록, 국민들은 실력과 양심을 갖춘 진단검사의학 전문의의 역햘이 중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진단검사의학과는 과잉 진단 문제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할 수 있다. (공릉동 연구실에서 홍영준)


[2015-6-25. 표절에 관하여 - 황현산]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그 시가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를 표절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민주화의 대의를 위해 입을 다물었다. 어떤 것이건 손에 잡히는 것을 들고 싸워야 했던 시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엘뤼아르의 <자유>가 길고 반복적인 성찰로 자유를 내면화하는 데 비해 민주주의를 절규하는 목소리로 ‘호소’하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그 감동이 그만큼 더 직접적이기에 더 훌륭한 시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그것이 표절을 말하려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기도 했다.

표절의 지적은 작가에게 가장 불리한 정보라고 나는 벌써 말했는데, 이런 정보가 늘 극단적인 형식으로 제시되어 맹렬한 바람에 실릴 때만 소통된다는 것도 이 사회의 비극이다. 무거워진 정신상태는 저마다의 각성으로만 가벼워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일원내시경교실 바른내시경연구소 이준행. EndoTODAY Endoscopy Learning Center. Lee Jun Ha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