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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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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 경향신문] 요리사 전성시대의 그림자

텔레비전에서 요리는 신나는 오락이며, 요리사는 늘 행복하게 비친다. 천만의 말씀이다. 요리사의 대다수는 여전히 실직 불안과 저임금, 기술 습득에 대한 부담, 치열한 경쟁의 고통을 안고 일한다. 산별노조는 고사하고, 현장에 맞는 요리사 표준임금안 같은 것들도 없다.

한마디하자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사들이 대한민국 전체 요리사의 어떤 상징이나 대표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달라. 미디어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고 기술을 닦아 후배들을 양성하는 훌륭한 요리사들이 많다. 우리 요리가 한 걸음씩 더 나아가는 것도 그들 덕이다. 요리사 선배로서 요리사 지망생들의 사기를 꺾고 싶지 않지만, 요리사는 고통스럽고 가장 취약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들에게도 당부하자면, 맛있는 음식은 유명세와는 대체로 반비례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2015-5-1. 조선일보] 선택적 노출 함정에 빠진 외교부

더 큰 문제는 한국 외교가 보여준 `무능`과 `전략부재`라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아베 총리 미 의회연설을 앞두고 이미 대미 외교에서 `빨간불`은 켜져 있었다. 미 주요 당국자들은 한·일 관계를 놓고 `과거사`는 풀어야 한다면서도 `미래`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내왔다.

외교부는 그러나 전형적인 `선택적 노출` 태도를 보이며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미국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베 총리가 안보(미·일 방위협력지침) 경제(TPP) 등 선물 보따리를 싸들고 가는 마당에 막연히 `과거사` 문제에 있어 미국이 우리 편을 들어줄 것이라며 외교현실을 오판한 것이다. 우리 외교가 미국에서 잘하고 있다는 보고용 자료만 수두룩하게 내다 보니 결국 아베 총리의 `이중 행보`와 이를 용인하는 미국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이 일본 외교의 완승으로 끝난 것은 한국 외교가 과거사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자승자박`한 결과라는 평가다.


[2015-5-2. 조선일보] 하버드? 말 잘듣는 양떼일 뿐. (link는 없습니다. Premium Chosun이라고 log in을 해야만 볼 수 있습니다)

하버드 법대 출신의 듀카키스가 부시를 놀린다 "이 선거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선거는 능력에 대한 것입니다." 부시는 이렇게 반박했다. "능력은 기차를 제 시간에 가게 만들지만, 기차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선도할 수 있는 리더들을 길러내는 것이 관건이다. 새로운 엘리트를 개발하지 않으면 미국의 미래는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어떤가. 이 모든 것들이 정말 미국의 사례로만 들리시는가.


2015-5-7. 국회공청회에 다녀오는 지하철에서 이런 광고를 보았습니다. 유산균 이식 내시경이라......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2015-5-8. 어버이날에 우연히 이런 사진을 보았습니다.



"환자에게 구타 당하고, 교수-선배에게도 맞는 전공의들"이라는 끔찍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비장이 파열되었다고 합니다. 서울의 모 대학병원이라고 하는데... 절대로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간 소개를 보다가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습니다. 제목은 “지배받는 지배자”인데 미국 학계에 종속된 우리나라 엘리트의 슬픈 자화상에 대한 내용인 모양입니다. 한 권 구입해 읽어볼까 생각하다 이내 그만두었습니다.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많은 분들이 미국 대학과 미국 학회를 오가며 꿈을 키우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심한 반감을 가지게 될 것 같아서... 우리나라 엘리트들에 대한 색안경을 하나 더 가지게 될 것 같아서... 그냥 신문에 실린 서평만 읽고 머리를 저어봅니다. 안타깝습니다. 언제까지 미국만 바라봐야 하는지. 일부를 옮깁니다.

한국 엘리트들은 왜 미국 대학의 권위에는 도전할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여기엔 유학 시절의 경험도 큰 요인이다. 유학을 결심하고 희망에 부풀어 도착한 미국 명문대 강의실. 교재로만 만나던 학문의 대가를 직접 만난다는 기쁨도 잠시, 이내 암울한 현실 앞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학생들 틈에서 꿀먹은 벙어리마냥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던 경험, 다들 웃는데 무슨 영문인지 몰라 울고 싶은 심정이 됐던 기억, 동료들보다 읽는 데 몇 배는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했던 원서의 부담 등이 어디서나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던 수재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다. “유학 시절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는 한 교수의 말은 많은 걸 함축한다. 그럼에도 미국 대학의 교수진이 전수하는 학문 자본의 양과 질, 대학 인프라의 탁월함, 우수한 연구네트워크 등은 경외의 대상이다. 그렇게 미국이라는 공간은 유학생들에게 끔찍한 대상인 동시에 존경의 대상으로 이중성을 띤다. “‘똥밭’을 구르지만, 자신의 미래에 ‘거름’이 되는 가치 있는 장소로 미국을 인식하는”(118쪽) 셈이다.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며 차이점을 기술하는 비중을 늘려간다. 학부 학벌과 박사 학벌이 모두 중요하게 작용하는 국내 대학의 교수 임용과정, 여성 교수 뽑기를 주저한다거나 연공서열 문화 때문에 학과 교수들보다 나이가 많은 후보자들은 교수 채용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은 미국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의 특징이다. 사회적 지위와 학문적 명성 간 불일치도 한국 학계에서만 나타난다. 미국에서 학과장, 학장, 학회장이나 학술지 편집장을 연구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맡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연구 능력보다 ‘술자리’ 네트워킹을 잘하는, 특정 학벌이나 파벌의 리더가 주류가 된다.

한국 사회에서 힘깨나 쓴다는 미국 유학파 대부분도 미국 본토에선 한없이 초라한 비주류일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고 마치 지배층이나 되는 양 어깨에 힘 주고 다닐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과도한 미국 의존도를 탈피해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의 격차를 해소할 것인가. 저자는 “엘리트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그 방법을 찾는 데 온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적 열등감을 극복하고 '독립'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최신 트랜드를 따르기보다는 우리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경청하는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미국 학계에 종속된 우리나라 엘리트의 슬픈 자화상은 그만 보고 싶습니다.


영혼의 향기 담아 ‘힐링 커피’ 만드는 ‘커피 중독자’ 마은식

커피 한잔이 그리운 시간입니다. 커피 한잔 하지 않을 수 없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런 말이 나옵니다. "진짜 잘 만들어진 커피는 피색깔이다. 커피에 피 같은 인생의 에센스가 들어 있어야 한다." 부암동 ‘클럽 에스프레소’ 주인장 마은식에 대한 찬사는 이렇게 끝납니다.

밤 늦은 시간, 서울 북촌에서 나는 아메리카노를, 진짜 커피만 고집하는 그는 맥주를 마셨다. 하지만 마은식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커피 잘 마시는 방법은 또 영 딴판이다. 최대한 느긋하게, 음악과 독서와 예술의 분위기 속에서, 자기 앞의 생의 고독도 깊이 들여다보면서, 진한 사랑과 안타까운 이별로 가슴이 터질 때,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고 위로하고 싶을 때 마시는 커피야말로 인생의 커피다. 그렇게만 한다면 다방 커피면 어떻고, 자판기 커피면 어떤가. 아무리 대단한 솜씨로 커피를 내린들 그게 무슨 대수인가. 마은식이 그렇게 말했다.


관행은 관행입니다. 옳지 않은 관행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관행이라고 인정되지 않습니다. 최근 기사 하나 소개합니다.

인공신장기용 여과기와 혈액회로를 판매하면서 의료기기 판매금액에 투석실 배관공사, 환자용 TV, 컴퓨터, 환자용 침대 등 병원 혈액투석실에 사용하는 비품을 포함시켜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관행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불법 리베이트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비품중 일부가 의료기관이 필요에 따라 구매할 수 있는 대체 가능한 것들이 포함돼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된 것 같습니다.

한 가지를 구입할 때 따로 구입할 수 있는 몇 가지를 끼워 파는 회사들의 관행때문에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받았다고 비난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은 해도해도 너무했습니다. 혈액투석관련 거래에서 TV까지 끼워 팔았으니... 여하튼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은 틀린 관행입니다.


역사학자 이이화씨에 대한 어떤 기사

고졸 학력에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적도 없는 역사학자 이이화씨(78). 주역의 대가였던 아버지 야산 이달 선생은 학교를 보내주지 않았다. 일제 때는 학교에 가면 일본놈이 된다고 했고, 해방 뒤에는 서양놈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아원에 가면 학교를 갈 수 있다는 말에 가출했다. 여러 고아원을 전전하며 공부에 열중해 광주고에 입학했다. 광주고는 유일하게 정식으로 졸업장을 받은 학교다. 서라벌예대에 입학했다가 등록금이 없어 자퇴했고...


[2015-5-22. 새벽 단상] 미국 학회에서 있었다는 어떤 민망한 일에 대하여

미국일은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DDW에 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러 한심한 꼴을 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아랫사람 논문을 갈취하는 관행이나, 남의 돈으로 놀러나가는 행태나 모두 한심한 일입니다.
절이 썩었습니다. 절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에 저는 그 절에서 나왔습니다.
그 대신 암자에서 도를 닦고 있습니다.
과거의 선승처럼 닫힌 암자는 아닙니다.
열린 암자입니다.
EndoTODAY라는 열린 암자에서 도를 닦고 있습니다.
내시경실이라는 열린 암자에서 아직 때가 덜 묻은 젊은 선생들과 내시경에 대하여 토론하며 도를 닦고 있습니다.
학회에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욕심은 버린지 오랩니다.
학회를 통하여 남들을 바꾸려는 생각도 버린지 오랩니다.
DDW에서 회원들이 포스터 앞에 서 있도록 대책을 세우자는 제안을 했을 때 돌아온 그 싸늘한 response 기억나지 않습니까?
좀 더 발을 빼려고 합니다.
그냥 고승처럼 살려고 합니다.
내시경에 대한 강의나 하면서...
안전에 대한 강의나 하면서...
남의 논문 갈취하지 않고...
남의 돈 받지 않고...
공짜 술 마시지 않고...
공짜 학회 가지 않고...

이준행


[지의 정원]

일본에서 유명한 2명의 지성인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의 대화록 ‘지의 정원’을 다시 읽었습니다. 주로 다치바나가 묻고 사토가 답하는 형식입니다. 일부를 옮깁니다.

(111쪽) 칸트가 말한 자기모순적인 이율배반을 견뎌내는 힘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정치세계에서는 여러가지 견해들이 차이를 보이며 부딪치곤 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차이를 완전히 일치시키려 하기보다는 그 차이를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122쪽) 저는 머리가 나빠지는 공부가 있다고 봅니다. 그중 하나가 입시공부입니다. 국가공무원시험이나 사법시험을 서너 번씩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기억한 것을 일정한 시간에 종이 위에 재현하는 것은 우리 뇌의 기능 가운데 기억력과 조건반사 능력밖에 사용하지 않는거죠. 한 분야에 지나치게 오랫동안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머리가 나빠집니다. 입시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다 보면 머리가 나빠져서 그 틀을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대단한 독서가였지만, 독서가 지나치면 좋지 않다고 거듭 경고합니다. 독서한 다음에는 생각하는 행위가 필요한데, 책을 너무 많이 읽다보면 생각할 시간이 줄어들어 오히려 머리가 나빠진다는 것이지요.

(129쪽) 그런데 학생들 가운데 질문도 탐색도 아니고 반론도 아닌 단순한 의견표명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의견표명은 교실에서는 시간 낭비이지요. “상황은 잘 알겠지만 절대로 내가 옳다고 생각한다.”라는 식의 의견표명입니다. 그러면 신들의 전쟁처럼 돼 버리죠. 신들의 전쟁은 조정하고 멈출 수가 없습니다.

(147쪽) 요즘 등장하는 커피숍, 예를 들면 스타벅스나 도토루 같은 곳은 예전의 다방과는 의미가 전혀 다른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음모를 짜내는 분위기 따위는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149쪽) 앞으로를 위해 반드시 부활시켜야 할 것은 독서인 계급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하나의 계급이라고 할 수 있죠. 최근 강연에서 느낀 점은 10년 전과 비교해서 질의응답시간에 질문하는 사람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질의웅답시간이 끝나는 순간, 강단 앞에는 긴 줄이 생깁니다. 차라리 개별적으로 물어보지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190쪽) 저속한 부분을 다 걷어 버리고, 걸러내어 맑은 부분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공무원 시험입니다. 저속한 부분도 문제로 내면 좋겠지만요...

(194쪽) 쿼터화란... 요컨데 전체상을 파악하는 사람은 한 명도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부분적인 정보밖에 가질 수 없게 하지요. 그래야 비밀이 지켜집니다... 만일 큰 일이 일어나는 경우 일본의 관료 조직에서는 상부에서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지시가 내려옵니다. 그건 바로 단 한 마디, “잘해”입니다. 최종적으로 실패하면 어째서 정확히 보고하지 않았느냐며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지요. 하지만 마지막에 잘되었을 경우에는 “내가 지시한 대로 잘 했다”라면서 상사가 성과를 다 가져가지요.

(202쪽) 헤겔의 개념 틀 안에서 논의해보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헤결은 모순, 대립,차이라는 개념을 구별하지요. 마르크스가 든 예이지만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모순이 있어도 협동조합을 만듦으로써 자본가와 노동자의 전화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모순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대립은 한 편이 다른 한 편을 완전히 절멸시킬 때 해소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차이는 해소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논쟁하는 상대가 “당신이 뭐라고 하든 이것은 내 취향이다”라고 해 버리면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될 수 없습니다. 취향은 차이니까요. 차이가 해소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시의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어느 쪽 입장에 서느가에 따라 세계는 다르게 보입니다.

(233쪽) 일본 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라는 독약에 병든 종교단체입니다... 사상이라는 것은 무서운 독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독약을 버틸 수 있는 힘은 바로 교양에서 나오지요... 교양이란 미지의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라고 합니다.

(262쪽) 쇼펜하우어는 대단한 독서가다. 그는 독서는 다른 사람의 머리로 사고하는 것이므로 바보가 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독서는 교양을 익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교양은 아무리 정보나 지식이 쌓여도 자신의 머리로 사고하지 않으면 익혀지지 않는다.


[지배받는 지배자]

지난 금요일 EndoTODAY 애독자 후배로부터 책 한권을 선물받았습니다. 제목은 ‘지배받는 지배자’. 며칠 전 제가 EndoTODAY update에서 서평을 소개했던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선물을 주신 그 분은 책의 내지에 아래와 같이 쓰셨습니다. “퇴계는 우리에게 칸트보다 멀다.”

3일간의 연휴를 끙끙 앓으면서 선물받은 책을 읽었습니다. 간혹 감기가 독서에 도움이 됩니다.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김종여 교수가 쓴 이 책은 미국 유학생 출신 한국 엘리트로 구성된 우리 나라 학계를 따끔하게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네 눈의 들보를 빼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한장 한장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자가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여 더 좋은 대학을 만들어간다면 우리에게도 밝은 미래가 있다는 희망으로 글을 맺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더 훌륭한 도서관을 만들고 밤낮으로 불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대목에서는 감동의 물결이......

미국 학계의 헤게모니에 봉사하는 연구를 하지 않으면 이 땅에 발붙이기 어려운 현실에서 한 현직 교수가 이 정도의 책을 낼 수 있다는 것도 발전이라면 발전입니다. 약간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지만, 처음 조교수 발령을 받았을 때처럼 '공부와 연구에 더욱 힘써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10여년만입니다. 평생 조교수처럼 살아야 되겠습니다. '건달 교수'는 되지 말고.

(8쪽) 이 땅에서는 학문은 멀고 학연은 가깝다. 한국 지식인들은 한국 사화의 비합리성을 끈질지게 비판해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진도든 보수든 한국 지식인 중 자신이 속한 대학과 지식 공동체에 가혹하게 비판을 가하고 변혁을 요구한 사람은 드물다.

(150쪽) 실적의 정량화, 표준화는 교수 임용 과정에서 후보자의 인맥, 젠더, 연령 등 특수주의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다.

(248쪽) 이렇게 장기간 여러 단계를 거쳐 검증되는 (미국의) 교수 임용과정은 한국보다 훨씬 심도 있고 질적으로 높다. 논문의 편수도 중요하지만 한국처럼 철저히 정량화되어 평가되지 않는다.

(187쪽) 이공 계열의 경우 SCI급 논문과 국내 등재지는 확연히 구분되는 서열을 가진다. 국내 저널에 논문을 내는 것은 거의 업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연구자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경우도 있다... 국내 저널에 내는 연구자들을 “공부하지 않지만 논문을 해결해야만 하는”사람으로 취급한다...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는 연구만 하는 개인주의적 교수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학과 행사나 학회 행사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교수는 ‘얌체’로 낙인찍혀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의 학계는 학벌뿐만 아니라 학문 분과, 기관, 조직 등으로 잘게 나뉘는 ‘칸막이’ 문화가 심한데, 이는 활발한 연구를 방해한다.

(194쪽) 연구는 하지 않지만 자신의 네트워크로 연구 수행을 하려는 사람을 주 교수는 ‘건달’로 지칭한다.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건달의 비율도 따라서 높아진다고 덧붙였는데 그 이유를 묻자, “편한 분위기에 그렇게 되는 거죠. 잘 먹고 잘살잖아, 교수면”이라는 말로 답했다. ‘학자의 건달화’는 유교적 위계문화와, 연구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문화로부터 기인한다. 한국 대학에서 권위는 학문의 우수함보다는 나이와 직위에서 나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연구자를 실력으로 평가하는 문화를 저해한다. 8장에서 논의하겠지만 미국 교수들은 나이가 많아도 연구를 하지 않으면 철저하게 무시당한다. 학문의 자율성과 실력 위주로 학계를 재편해야 한다는 젊은 세대의 요구가 점차 거세지고 있지만, 한국 학계의 폐쇄성과 타율성은 여전하다. Thomas Kuhn은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전 세대의 저항이 심해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들이 죽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사의 통찰로 볼 때, 한국 학계의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신진세대와 구세대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학문은 감정적 작업이다... 학문의 길만이 최고로 가치 있는 일이라는 기이한 최면과 환상 없이는 진정한 학자가 될 수 없다. 이러한 학문에 대한 종교적 맹목성은 감정적으로 충만한 학문 공동체 속에서만 배양된다.

(231쪽) 그래서 그녀는 MBA 과정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인 것이다.

(239쪽) 정교수가 된 이후에도 왜 그렇게 연구를 열심히 하느냐는 질문에 M 교수는 ‘문화’ 때문이라고 대답하면서, 연구를 게을리하는 교수는 철저히 무시당하는 미국 대학의 분위기를 언급했다. 열심히 연구하지 않는 교수의 말은 설득력이 없으며 대학원생도 오지 않는다. 연구 업적이 없는 교수는 실험실을 내놓으라는 압력에 시달리며, 수업을 더 많이 배정받는다. 성과주의 때문에 연구 실적에 따라 연봉 인상률이 해마다 달라진다. 미국의 주립대학과 공립대학은 연봉을 공개한다. M 교수가 속한 대학과 학과도 연봉이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있었는데, 같은 정교수라도 연구 업적에 따라 월급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58쪽) 한국 대학과 학계에 있어 리더는 학문적 리더라기보다는 특정 학벌이나 파벌의 리더일 가능성이 더 크다. 어떻게 보면 한국 대학에서 학문적 리더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학문적으로 경쟁할 상대도 없고 경쟁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부재는 학문적 역량의 미약학과 연관된다. 결과적으로 학문적 경쟁을 추동시키지 못하고, 미국이나 유럽 하계의 학문적 리더십에 의존하는 경향을 낳는다.

(296쪽) 학문은 더럽다 (Academia Immunda)... 한국 지식인들에게 한국 대학과 학계에서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를 전복시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 (the unthinkable)’일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 유학파가 이 헤게모니에 도전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들은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에 지배받는 자이지만 한국 대학과 사회에서는 지배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약자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엘리트들은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의 엄청난 격차를 줄이려는 시도를 하기보다 이 격차에서 오는 이점을 활용하려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대학의 전방위적 개혁은 멀고, 개인의 당면 현실은 가깝다... 따라서 숙명론적이고 비관적인 전망보다 냉철하면서도 긍정적인 안목을 가지고 꾸준히 매진하는 것 외에 길이 없다. 좀 더 나은 실험실을 세워서 연구에 정진해야 한다. 더 훌륭한 도서관을 만들고 밤낮으로 불을 밝혀야 한다. 연구 현장에서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질 높은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



© 일원내시경교실 바른내시경연구소 이준행. EndoTODAY Endoscopy Learning Center. Lee Jun Ha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