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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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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산대 교수님께서 논문 편수로 연구자를 평가하는 세태를 한탄하고 계십니다. 비단 한문학과 교수님이셔서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영혼이 담긴 한 편의 멋진 논문을 쓰고 싶습니다. 우리말로.

[2015-7-31. 경향신문] {강명관의 심심한 책읽기} 사라지는 논문집

대학에 자리를 잡고는 각 학회에서 보내오는 논문집을 모아두었다. 연구실 한쪽 서가에 논문집별로 나란히 꽂아두고 필요하면 꺼내 보곤 했다. 하지만 4년 전 이 논문들 역시 모두 버렸다. 워낙 빨리 불어나므로 감당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왜 논문집들이 이렇게 늘어났는가? 약 10년 전부터 대학에 ‘경쟁력 강화’ ‘무한경쟁’ 등등 ‘경쟁’이란 말이 화두가 되면서부터였다. 교수들에게 논문을 증산하라고 강요했고 논문의 편수로 교수를 평가했다. 논문 생산량이 많으면 높은 등급을 받고 인센티브를 더 받을 수 있다.

공부하는 사람은 적고 학회는 늘어나고 또 논문집도 늘어나니, 거기에 실리는 논문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논문의 편수로 모든 것을 평가하니 견실하게 공부하는 분위기는 사라지고 어설픈 논문을 삼류 논문집에 여러 편 싣고 높은 평가를 받아 자리를 꿰차는 경우도 허다하다. 도무지 옥석을 가릴 수가 없다. 논문의 편수로 연구 업적을 평가할 수 없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문제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책임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서서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나가면 학문은 자연스레 멸종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앞으로 10년 뒤면 책이라고는 한 권도 없고, 그냥 컴퓨터만 달랑 한 대 있는 교수 연구실을 보지 않을까? 하지만 학문의 수준이 정말 높아져 있을까? 그게 더 의문스럽다!

제게는 컬럼 마지막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책 한권 없는 교수 연구실을 상상하셨습니다. 사실 제 방 책꽂이에는 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래 사진). 벌써 몇 년 되었습니다. 3년간 보지 않은 책을 버렸더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앞서갔나요?


흥미로운 사진입니다 (링크). 단체로 모두 뒤집어졌네요...


위암 이겨낸 정현석 ‘희망의 안타’ 날렸다


[New York Times 2015-8-3] Effective ovarian cancer treatment underused

난소암 치료에서 intraperitoneal (IP) chemotherapy는 효과가 좋은데도 불구하고 사용예가 적다는 기사입니다.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을 읽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결국 돈문제였으니까요. 한마디로 신약을 사용하면 돈이 되는데, generic 약을 사용하면 돈이 되지 않아서 미국 의사들이 좋은 치료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슬펐습니다.

Experts suggest a variety of reasons that the treatment is so underused: It is harder to administer than intravenous therapy, and some doctors may still doubt its benefits or think it is too toxic. Some may also see it as a drain on their income, because it is time-consuming and uses generic drugs on which oncologists make little money.

Dr. Markman said that when a treatment involves a new drug or a new device, manufacturers eagerly offer doctors advice and instructions on its use. But this treatment involves no new drugs or devices, so no one is clamoring to educate doctors about it. They are on their own to learn, and to train their nurses, a commitment that will take time and money.


[위대장내시경 아카데미]

외과복강경수술연구회로부터 아래와 같은 안내를 받았습니다.

큰 병원의 경우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은 소화기내과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다른 과 선생님 중 내시경을 배우려는 수요는 많은습니다. 병원 수련과정에는 정식으로 들어가지 않았거나, 들어가 있더라도 형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책적으로 training을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외과에서 스스로 공부하도록 보고있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정식으로 training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 좋을까요? 내과에서 가르치지 않는다고 외과나 다른 과 선생님들이 내시경을 포기할까요?

복부초음파에도 거의 비슷한 이슈가 있습니다. 내과에서 배우고 싶은데 영상의학과에서는 도무지 가르쳐주질 않습니다. 영상의학과에서 가르치지 않는다고 내과 선생님들이 초음파를 포기할까요?

환자중심으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2015-8-15. 강북삼성병원 강의를 준비하며 '첫 논문의 추억과 연구 시작하기'를 생각합니다]

저는 논문을 많이 쓰는 교수가 아닙니다. 요즘은 2년에 하나가 목표입니다.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PubMed에서 '이준행'과 '성균관'을 keyword로 입력하였더니 95개가 검색되었습니다 (종설, 증례, editorial 포함). 제가 제 1 저자인 문헌이 11개, 교신 저자인 문헌이 17개였습니다. 사실 제가 썼지만 제1 저자도 아니고 교신저자도 아닌 논문이 4개 있었습니다 (11907356, 11920781, 12630016, 17905010). 그 중 2개는 제가 자료를 받은 것이고, 2개는 아이디어를 받아 자료를 모은 것입니다.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디어가 중요한 연구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제1 저자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견습 단계의 젊은 의사는 제 2 저자로 논문을 내는 것이 당시의 관행이었습니다.

과거의 관행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름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견습기간 동안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1 저자나 교신저자는 아니더라도 선배들의 충실한 지도를 받으며 논문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출판윤리를 강조하는 최근의 경향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민주적인 기회 제공이 오히려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논문을 쓴 사람이 제1 저자가 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한번도 논문을 써보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제1 저자로 연구를 주도하여 논문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모든 과정을 소화하지 못하면 단 하나의 논문도 못 쓰게 됩니다. 눈썰미가 좋고 감을 빨리 잡는 사람은 자기 논문을 쓸 수 있지만, 조금 천천히 배우는 사람은 자기 논문을 갖지 못하는 것이 요즘 방식입니다. 토끼는 살고 거북이는 죽은 방식입니다. 조금 느리지만 꼼꼼하고 신중한 거북이는 모두 사라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제2 저자로서 논문을 쓰면서 스스로 '자기 논문 만드는 법'을 배우는 방식 - 저의 방식이었습니다 - 은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만약 그런 일을 시켰다가는 악덕 교수로 신문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세상이 이러하니, 연구하는 법 혹은 논문쓰는 법에 대한 강의 요청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도제방식으로 견습 단계를 거치면서 조금씩 익혀야 하는 기술을 강의로 대신해 달라는 것입니다. 강의의 결과는 항상 '실패'입니다. 논문쓰는 법을 어떻게 강의한다는 말입니까. 라디오를 듣고 발레를 배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도 강의는 계속됩니다. 제2 저자로 논문쓰는 법을 연습해보라고 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출판윤리는 지켜야 하니까요.

저는 출판된 SCI 논문 하나 없었는데도 조교수 발령을 받았습니다. 일단 발령을 주고 seed money 혹은 'seed 기회'를 제공한 후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과거의 방식이었습니다. 요즘은 SCI 논문이 여러개 있어야 대학병원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견습이고 뭐고 없습니다. 1년차 신인도 홈런을 쳐야 합니다. 참 어려워졌습니다.

여하튼 '논문쓰는 법' 강의를 의뢰받았습니다. 실패는 자명한 결과입니다. '논문쓰는 법'에 대한 책은 많기 때문에, 내용을 조금 바꿔 '연구하는 법'을 강의하려 합니다. 저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운이 좋았던 저의 첫 경험을 소개하면서... 요점은 이것입니다. "Something New에 집착하지 말자. Me Too 논문을 쓰자. "So what?"을 무시하자."

진짜 훌륭한 논문은 교수가 된 이후라도 늦지 않습니다. 일단 쓰십시요. 처음부터 훌륭한 논문을 목표하면 하나도 못쓰게 됩니다. 일단 시작하십시오. 처음에는 서둘러야 합니다. 엉성하더라도 논문 3개를 써 보십시오. 그 이후로는 저절로 됩니다. 처음이 어렵습니다. 하면 됩니다.


[2015-8-17] 중국 텐진항 폭발사고

사고는 늘 일어납니다. 중국에서만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보다 조금 잦을 뿐이지요. 이 또한 의문이지만...

우리에게도 사고는 계속됩니다. 'Normal accident'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고는 늘상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항상 대비하라는 말일 것입니다. 사고 가능성을 잊는 순간 사고는 일어납니다. Propofol로 인한 사망사고는 주로 젊고 건강한 사람에서 발생합니다. 사고 가능성을 잊었다는 말입니다. 방심했다는 말입니다. '설마'가 사람 잡습니다.

세월호를 잊지 맙시다.


[김상조의 경제시평] "너랑 나만 잘하면 돼"

교수는 교수다워야 합니다. 조금 순진해야 하는 것이지요. 손해보고 사는 것이 교수의 미덕입니다. 교수가 처세술에 능하면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좋은 교수는 아닙니다. 이 사람 눈치, 저 사람 눈치보면서 할 말을 못하면 교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요새는 큰 회사 사외이사 자리를 노리며 컬럼의 수위를 조절하는 교수가 많다고 합니다. 한심한 컬럼이 넘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예외인 것 같습니다. 도올의 말처럼 언론인과 지식인이 잘하면 됩니다. 자기는 못하면서 남을 탓하면 안됩니다.

"10년도 더 된 일인 것 같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도올 김용옥 선생이 기자와 대담하는 걸 보게 되었는데, 솔직히 대담 주제가 뭐였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하여튼, 주거니 받거니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가다가, 마지막에 기자가 "그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뭡니까?"라고 묻자, 도올 선생이 "너(언론)랑 나(지식인)만 잘하면 돼!"라고 답했다. 무릎을 탁 쳤다. 정말로 우문에 현답이다.

시민단체 책임자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언론 접촉이다. 당연히 경제 관련 기사나 칼럼은 꼼꼼히 챙겨 본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나 시각을 얻기보다는 '이렇게밖에 못 쓰나'라고 개탄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기사를 쓴 기자도 그렇지만, 거기에 코멘트를 달거나 기명칼럼을 쓴 유수의 지식인들에 대해 특히 그렇다."


[2015-8-20. 경향신문.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학술용어의 운명

요즘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읽고 있습니다. 우연히 조간신문에서 학술용어의 운명이라는 황현산의 글을 보았는데, 외래어에 대한 입장이 이태준과는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상세한 것은 다음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황현산의 글 일부를 옮깁니다. 저는 밑줄 친 부분이 좋았습니다.

원음을 그대로 표기하는 것이 그 말에 대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도 위험하지만, 모든 학술용어를 이미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로 통일함으로써 범세계적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보다 더 위험하다. 이런 생각이 실현된다면 우리말 전체가 학문으로부터 소외될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모든 지적 활동으로부터 소외된다. 간단히 말하자. 인간의 의식 밑바닥으로 가장 깊이 내려갈 수 있는 언어는 그 인간의 모국어다. 외국어는 컴퓨터 언어와 같다. 번역과정을 거칠 때의 논리적 정확성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낭비를 용납하지 않은 그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지식과 의식의 깊이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낭비에 해당하며, 그 낭비에 의해서만 지식은 인간을 발전시킨다. 외국어로는 아는 것만 말할 수 있지만 모국어로는 알지 못하는 것도 말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말은 도구적 기호에 그치지 않는다.

교수로 살다보니 영어로 글을 쓰라는 강한 압력을 받습니다. 영어로 쓰지 않으면 자리를 지킬 수 없습니다. 금방 짤립니다. 그런데 늘 어렵습니다. 황현산 선생님께서 "외국어로는 아는 것만 말할 수 있지만 모국어로는 알지 못하는 것도 말한다"고 쓰신 이유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영어로 쓴 저의 논문, editorial, 편지 등에서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절반밖에 못했습니다. 다 말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저의 짧은 영어가 문제입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과 사고방식이 다른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방법은 둘 중 하나... (1) 영어 공부를 더 한다 혹은 (2) 우리말로 쓴다. 저는 당연히 후자를 택합니다. EndoTODAY를 영어로 바꾸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금방 포기했습니다. 도무지 제 생각을 영어로 쓸 수 없었습니다. 미묘한 느낌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우리말이 좋습니다.


[2015-8-21. 소통]

소통에 대하여 인터뷰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소통은 인터뷰 주제가 될 수 없는데... 여하튼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기대치를 낮추자

고객을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지름길은 기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기대치가 낮다면 작은 서비스에도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낍니다. 소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통의 기대치를 높이는 것은 소통을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소통의 창'은 '불통의 창'이 되기 마련입니다. '소통'을 표방했기 때문입니다. 소통은 외치면 외칠수록 멀어집니다. 조용히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느끼고 파악하여 먼저 해 주는 것이 소통입니다. 말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소통은 listening이 아니고 doing입니다. Speaking은 소통의 반대말입니다.

2. 먼저 해주자

말을 하지 않았는데 조직에서 먼저 해 주면 감사한 일입니다.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내게 딱 필요한 것을 먼저 해 주게 되었을까?" 고맙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통은 반대입니다. 소통한 후에 도무지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일단 말을 주고 받은 후에는 해주면 당연한 일이고, 해주지 않으면 '도대체 소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일단 '소통' 형식으로 어떤 요청을 받으면 아주 빨리 해주어야 합니다. 놀랄만큼 빨리 해야 합니다. 아주 빨리 하면 본전, 천천히 하면 손해, 안 하면 완전 손해입니다. 이치가 이러하니 소통을 내세우고 소통하면 항상 실패합니다. 조용히 숨어서 아무도 모르게 고객이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먼저 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입니다. 몸을 낮춰 늘 아랫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소통입니다. 소통을 행사화(event화)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그냥 해주십시오. 뭘 원하시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3. 광장과 칠판이면 충분

소통 채널은 단순할수록 좋습니다. 채널이 많으면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할 지 알 수 없습니다. 기존의 소통 채널을 모두 버리는 것이 소통의 시작입니다. 어짜피 도움이 되지 않았던 소통도구였으니까... 도움이 되었더라면 이런 인터뷰는 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니까... 소통은 서로 통하는 것입니다. 넓은 광장과 칠판 하나면 충분합니다. 입력은 광장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출력은 칠판에 알릴 것을 간단히 쓰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애드립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 ‘마음’ - 전문가들과의 대화

마루야마 = (질문을 자르며) 판이 아니에요. 한 점을 봐야 해요. 제가 오프로드 바이크를 타는데, 절벽으로 치달을 때 빠져나오는 법을 알려줄게요. 급커브를 틀어야 살아요. 아마추어는 무서우니까 이곳 저곳 둘러보며 상황을 잽니다. 하지만 프로는 출구 한 점만을 응시하죠. 전체를 본다고 두리번거리면 시선이 애매해져요.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칩니다. 한 점이 왜 중요한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가장 중요한 한 점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그 지점이 우리 마음을 단단히 다잡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지식인 중에 외국 신문, 일본 신문 이 잡듯 읽는 이들이 있어요. 뭔가 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겠죠. 그런데 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몰라요. 우리는 스스로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세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잘못하는 것이 서재에 들어가 아무도 안 만나고 골똘히 ‘인생은 이렇다’ ‘인간은 저렇다’ 답을 내리는데, 그 과정에서 답은 왜곡됩니다. 풀 한 포기, 작은 나무 한 그루를 키우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을 평생 모르고 살아요. 아까 생선장수 이야기했죠? 아침부터 밤까지 생선만 팔았을 거예요. 신문도, 철학서도 안 읽고. 그래도 ‘조선인이 침략해 온다는 소리는 거짓이다’라고 단칼에 답을 내렸잖아요. 전체를 보는 것은 그런 것이에요. 전체를 보고 싶다면 전체를 보지 마라. 한 점을 봐라!


[2015-8-25] 극복해야 할 추종주의

일년에 SCI 논문 몇 개를 생산하는가로 학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바보같은 일입니다. 서구의 SCI 논문에 글을 싣기 위해서는 주제 선정부터 서양 학자들의 입맛에 맞아야 합니다. 우리 현실에 꼭 필요한, 우리의 방법론에 따른, 우리의 연구를 하면 SCI 저널에 출판하기 어렵습니다. 저널에 내지 못하더라도, impact factor가 낮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저는 우리 현실에 꼭 필요한 우리의 연구를 우리의 방법으로 하고 싶습니다. 경향신문 광복 70주년 기획 기사를 읽으며 '중심부 세계의 지식을 소개하는 소매상'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경향신문 광복 70주년 기획 - 7대 폐습 이젠 결별하자] 학문, 미국 편식·서구 추종…우리의 ‘머리’는 과연 독립했나

학계의 서구 추종을 부추기고 종속성을 견고화하는 데에는 외국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가중치를 주는 국내 학계의 평가 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강정인 교수는 “외국 학술지에 투고하려면 그들의 유행에 맞춰야 한다”고 단언했다.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절실한 주제를 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우리 같은 민주주의 신생국에서 정의는 과거사 청산 문제와 반드시 연결된다”며 “그러나 롤스나 샌델의 정의론에 과거사 청산 문제가 나오느냐,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학자적 양심과 주체성을 따라 서구 종속성을 탈피하려는 이들도 있다.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사회교육)는 최근 펴낸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천년의상상)이 “주변부 지역의 서양사 연구자라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번민의 산물”이라고 토로하며 “중심부 세계의 지식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소매상 신세로 전락하지 않겠다고 나름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질러본 것”이라고 말했다.


[2015-8-27] 경향신문에 이화여자대학교 간센터 김태헌 교수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김 교수는 “환자에게 가장 좋은 진료는 바른(正) 진료라고 생각한다”며 “환자를 중심에 두고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가장 바르고 적정하게 실시해 의료윤리와 원칙에 따라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감이 형성돼야 좋은 치료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습니다. 바른 진료가 좋은 진료입니다. 바른 (正) 내시경이 좋은 내시경이구요. 더불어바른내시경연구소 소장 이준행 씀.


[2015-8-30] 경희대학교 심장내과 교수(박창범)가 책(약 권하는 사회)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구해 읽어보았습니다. 권할만한 책은 아니었지만 몇 부분은 꼭 들여드리고 싶어서 길지만 인용합니다.

(60쪽) 모 대학교 교수팀이 어떤 질병에 대하여 획기적인 치료법이나 진단법을 개발하였다는 기사가 나왔다면 99% 과장된 정보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동물실험이나 실험실에서 새로 개발된 신약이 우수한 효과를 보았다고 발표하는 기사는 아예 믿지 않아도 된다.

(144쪽) 최근에 출판된 한 책(의료보험 절대 들지마라. 김종명, 2012)에서 민간의료보험의 구조에 대하여 자세하게 분석하였다. 민간의료보험료는 순보험료와 부가보험료로 구성되며, 순보험료는 위험보험료와 저축보험료로 구성된다. 위험보험료는 보험급 지급이 이루어지는 재원이 되는 보험료를 말하며 저축보험료란 만기 환급금이나 중도 해약금의 지급을 위함 보험료이다. 사업비인 부가보험료는 보험설계사 계약비, 광고비, 회사 운영비 등을 말한다. 암보험의 손해율이 100%가 넘었다는 것은 위험 보험료에서 예상보다 높은 비율로 지급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보험회사가 위험 보험료율이 전체 보험료에서 얼마나 차지하는 지는 밝히지 않고, 단지 보험회사가 적립한 위험 보험료율보다 보험금지급이 초과한 것을 가지고 손해율이 100%가 넘었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험회사는 적립한 위험보험료에서만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업비 및 저축성 보험료에서도 이익을 남길 수 있고, 적립한 위험보험료보다 적게 지급한 경우에는 이를 가입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자기 이익으로 돌려버린다. 또한 모든 암을 다 보장하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보험사들이 암에 대하여 ‘중대한’이란 형용사를 붙이면서 보장을 축소시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중대한 암이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인 갑상선암은 중대한 암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적게 지급할 수 있다. 즉 갑상선 암은 진단 확정 후 5년 이내에 사망할 확률이 5% 이내이기 때문에 비교적 예후가 좋은 대표적인 악성신생물(암) 질환으로 보아, 보험회사가 계약서상 ‘중대한’ 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사항은 다음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악성신생물(암)로 ‘진단’받아야 하는데 ‘진단’의 의미에 대하여 여시 논란이 되고 있다. 암으로 진단받았다는 말은 악성종양이 의심되는 부위에서 조직검사를 시행하여 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암에 합당한 소견이 나오는 경우를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에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조직검사상 경계성 종양, 상피내암 (carcinoma in situ) 등 현재 악성은 아니지만 앞으로 악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경우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또한 의사들이 발급하는 진단서에 여러 가지 사정상 ‘임상적 추정’이라는 단어를 표시하였다면 보험금 지급을 못 받을 수도 있다...
수술비를 보험의 특약으로 설정한 경우 ‘수술’에 대한 정의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여러 질병에서 칼로 절개하는 과거의 전통적인 수술보다는 내시경적 수술과 같이 비교적 상처를 덜 남기는 새로운 수술기법(시술기법)이 많이 생기고 있다... 위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 민간보험회사는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193쪽) 의료진의 설명의무에 대해 언급해 두자. 이는 단지 부동 문자로 된 동의서에 서명날인을 받는 것만으로는 설명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되도록 수기로 후유증이나 다른 치료법에 대한 설명 근거를 남겨야 한다.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한다는 것은 의사가 하려고 하는 치료 행위의 내용과 효과 및 그에 따른 위험이나 부작용을 환자가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동시에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절대적인 판단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치료방법이 여러 가지인 경우 환자에게도 치료방법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므로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중대한 것인 경우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더라도 설명하여야 한다. 이런 설명은 환자가 아닌 의료인에게 있다. 최근의 판례에서도 의료진의 설명 의무가 강화되고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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