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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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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2. 경향신문] 마땅한 분노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말이 있다. 솔개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치며 뛰노는 모습으로 ‘천지자연의 모든 것들이 도에 합당한 자기 자리를 얻은 상태’를 형상화한 말이다. 자신이 뭘 잘하는지 발견해 가고 평생 마음 나눌 친구들을 얻는 학교가 학생이 날아올라야 할 하늘이고, 약자를 위한 법 집행이 이루어지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사회가 시민이 노닐어야 할 물이다.


[2015-9-3. New York Tims] 미국 신문에서 한국 프로야구 흉을 보았습니다 (링크). 홈런치고 방망이를 던지면 안된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는 멋진 장면으로 칭찬하는데 미국에서는 비신사적 행동으로 평가받는다는데...... 제국주의 횡포가 아닌가 합니다. 자신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는 미국의 나쁜 버릇을 누가 고쳐줘야 하지 않을까요?


[2015-9-3. 경향신문] 죽어도 바뀌지 않는 사회 - 전문을 옮깁니다. 10번씩 읽어봅시다.

"또 슬픈 일이 일어났다.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니 더 슬프고 안타깝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조금의 조심’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끊임없이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 후에는 조심을 누가 해야 했는가를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진다. 잘못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는지, 하청 또는 원청업체에 있는지 다투는 동안 사고는 기억에서 멀어지고, 다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한다. 조금도 바뀌는 게 없다. 지옥 같은 한국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이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물론 진단과 처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주를 주었기 때문, 2인1조라는 안전매뉴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 원청에서 감독을 하지 않았기 때문, 노조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기 때문, 처음부터 부실공사였기 때문 등의 진단이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안전관련 업무는 원청에서 맡아야 한다, 외주를 주어도 사고책임은 원청이 지도록 해야 한다,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등의 진단이 나온다. 이런 진단을 바탕으로 서울시에서 근본적 변화를 꾀하려는 것 같은 움직임도 보인다.

그런데 개선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서울지하철에서는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누적적자가 수조원에 달한다. 스크린도어 정비업무를 외주로 넘긴 것은 크게 누적된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 업무를 직접 서울지하철에서 맡게 되면 2인1조 규정을 지키게 될 것이고, 당연히 적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사고 감소를 위해 적자를 계속 더 늘리는 일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안전업무를 서울지하철에서 맡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사고의 핵심 원인은 서울지하철의 누적적자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하철 적자문제의 해결은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구조조정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는 것, 무임승차를 폐지하고 요금을 올리는 것, 세금으로 적자를 보전하는 것 등이 여기저기에서 제시되는 방안이다. 모두 타당성이 있지만 반발도 많다. 구조조정은 노조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요금인상은 시민들이 반발한다. 세금지원은 무상급식 도입 때처럼 찬반 논란을 크게 유발할 것이다.

이번 사고의 책임자에게는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될 것이라 한다. 지난 7월에 6명이 사망한 한화케미칼 사고에도 과실치사가 적용되었다. 한화 사고의 경우에는 책임추궁이 그 정도면 될 것 같지만, 이번에는 그것으로는 모자란다는 생각이 든다. 2인 중에 1인이 열차가 오는지 망을 보지 않으면 사망사고가 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1인만 보내서 작업을 하게 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이 서울지하철의 누적적자라면 낮은 요금을 내고 지하철을 탄 나 자신도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지하철 요금을 올리는 게 이런 살인에 가까운 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면 상당한 수준의 요금인상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정비나 운전 등 각종 안전업무에 2인1조 식의 매뉴얼을 지킬 경우 발생하는 비용의 일부는 서울지하철에서 감당하는 것도 필요하다. 작업환경이 크게 나아진다면 급여는 내려가도 된다는 생각도 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앞서서 시민들의 기본적인 이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요금이 올라가면 가까운 거리의 이동에도 제약을 느끼는 시민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결국 세금을 통한 적자보전에 대한 논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울시의 재정적자도 상당한 수준이니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 한다. 모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서울지하철 사망사고도 잊혀지고 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애도와 더불어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언젠가 바꿀 수 있을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2015-9-4. 데일리메디] 내과 전공의 집단사표 '도미노'

내과 의사로서 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나이 든 의사, 젊은 의사 모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2015-9-5. 양재천 돈 냄새]

양재천을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양재천까지 걸어서 30분. 자주 가는 코스는 아닙니다. 모처럼 기분 좋게 양재천 뚝길을 산책하던 중 고급 주상복합단지로 이어진 다리를 보았습니다. 갑자기 궁금해지더군요. 왜 이곳에만 이런 시설이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한 대기업에서 강남구청에 기부한 시설이더군요. 부자 동네에 기부하지 말고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요. 양재천 돈 냄새가 싫어졌습니다.


[2015-9-7. 경향신문] 공허한 제도 개혁론

공존과 협력의 시민 문화 내지 인간적 정서가 깊고 넓어지는 변화 없이 제도의 형식에만 의존해 실천되는 민주정은 군주정이나 귀족정보다 못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럴 경우 사회는 분열될 수밖에 없고 개개인은 사나워지기만 할 텐데, 이런 조건에서 누가 ‘목적 있는 좋은 삶’의 전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잘 알다시피 1987년 민주화 이후 28년째를 지나는 동안 선의를 앞세운 수많은 제도가 개혁의 이름으로 만들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좀 더 자유롭고 평화롭고 건강하고 평등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만들어지는 순간 작동되지 않아 유명무실해진 ‘죽은 제도들’만 무성해 보인다.


[2015-9-15. 강북삼성병원 Medical Writing Academy]

강북삼성병원 Medical Writing Academy 9월 교육에 다녀왔습니다. 강북삼성병원은 제게 고향같은 곳입니다. Fellow를 마치고 처음 일하던 곳이니까, 말하자면 저의 첫 직장인 셈입니다. 1시간 가량 일찍 도착해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강북삼성병원의 한 가운데에는 '京橋莊(경교장)'이 있습니다. 사적 제465호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공간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원래 친일파 거부 최창학이 1938년 건립하였습니다.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환국하자 경교장은 임시정부의 활동공간 및 김구 주석와 임정요인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중화민국 대사관저, 월남대사관 등으로 사용되다 1967년부터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당시에도 병원 원무과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 보았더니 완전히 문화재로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2005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10년 복원사업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임시정부의 국무회의 등 대표적인 회의들이 개최되고, 김구 선생님이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접견하던 응접실입니다.

관련 링크: http://www.dapsa.kr/blog/?p=9113


제 강의 제목은 첫 논문의 추억과 연구 시작하기였습니다. 논문과 강의를 위한 그래픽 이미지 관리를 포함하여 1시간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래픽 이미지 파일 관리 측면에서 저널 투고규정을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을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일전에 비슷한 질문을 받고 한 학회지 투고규정을 개선안을 낸 바 있어 소개합니다.

기존의 투고규정에는 'Powerpoint나 JPG 형식이어야 한다'거나 '30MB 이내이고 600dpi 이상이어야 한다'는 등 최선의 그래픽 이미지 파일 관리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개선안을 제안하였습니다. Line art (graph나 illustration)가 처음부터 Powerpoint에서 만들어졌다면 Powerpoint 자체를 받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실제 논문을 쓰는 분들이 저해상도 photographic image를 이용한 질낮은 Powerpoint를 학회지에 제출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따라서 투고규정 개선안에는 Powerpoint에 대한 부분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제 강의에 이어 대한내분비학회 EnM 편집위원장 이원영 교수님 (강북삼성병원 내분비 내과)의 "편집자 및 심사자와 소통하기"라는 제목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일부 내용입니다.

- 내분비학회 영문 저널 EnM가 최근 Scopus에 등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Scopus에 등재되면 국제학술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PubMED에 등재되었다고 국제학술지로 부를 수는 없다고 합니다.

- Revision에 대하여 답장쓸 때 중요한 것은 Be polite라고 합니다. 또한 Detailed rationale를 제공해야 합니다.

- Reject and reinvite로 답이 오면 70-80%는 결국 accept 됩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 Revision 과정 중 내용은 훨씬 나아지기 때문에 감사의 마음으로 원고를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 Reject 되는 이유 중 하나는 "Huge amount of editorial work is required"입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도 규정에 맞게 잘 써야 할 것 같습니다.

- 저널 많이 읽기, 연구 트랜드 파악하기가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남의 논문을 읽지 않고 좋은 논문을 쓸 수 없습니다.


[2015-9-16 경향신문] 뻔뻔한 시대의 염치

사람도 아닌 국가에 염치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염치는 애초 국가에 요구된 덕목이었다. <관자(管子)>의 첫 편 ‘목민(牧民)’에서 국정의 강령인 ‘사유(四維)’로 제시된 것이 예의 염치다. 염치를 ‘잘못을 은폐하지 않고 그릇된 길을 따르지 않음’이라고 풀이하고, 국가가 떳떳함을 잃고 잘못을 덮기에만 급급하다면 결국 회복 불능의 상태로 멸망하게 된다고 하였다.

일말의 염치라도 있다면 진즉 물러났어야 할 이들이 버젓이 지도층을 채우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너나없이 이기적인 욕망에 눈이 멀어서 염치 따위는 안중에 없다. “간곡한 사양으로써 상의 공정함과 위엄을 지키고, 제 작은 염치도 보전하는 노릇을 삼고자 합니다.” 선정 과정에 간접적으로나마 간여했다는 이유로 만해문학상 수상을 고사하며 던진 김사인 시인의 겸손하지만 단호한 말 한마디가 이토록 빛을 발하는 것은, 이 시대의 지독한 뻔뻔함 때문이다.


[2015-9-17 성균관 방문]

명륜동 인사캠에서 건강강좌가 있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성균관을 돌아보았습니다. 명색이 성균관의대 교수이지만 성균관을 방문한 것은 처음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명륜당 앞의 대성전은 공자님을 모신 사당입니다. 일년에 두번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성균관의 중심건물 명륜당입니다. 1398년 태조 7년에 설립되어 왕세자까지 교육한 조선시대 최고의 학부였으며, 때로는 과거 시험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명륜당 내부 천장입니다. 역사가 느껴집니다. 우측에 오래된 현판 보이십니까?

명륜당은 천원 지폐에 나오는 바로 그 건물입니다.


[2015-9-18. 매사냥]

점심 후 산책을 하다가 매가 비둘기 사냥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도시에 살고 있으나 야생성을 잃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15-9-24] 친구 조덕으로부터 시집을 선물받았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2015-9-26. 경향신문. 이문재. 대학은 경고음을 낼 수 있는가]

저항하지 않는 대학은 대학이 아닙니다. 외부 압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가 현재의 모습 아닐까요? 시인 이문재씨가 본질을 잘 짚고 있습니다.

대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제출되고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도 대학이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는 분석과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원인을 적시하기는 어렵지 않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경제(기업)논리의 유입, 교육 당국의 지나친 개입과 획일적 대학평가제도에 따른 교육·연구 기능의 붕괴. 이것이 대학이 대학 본연의 역할과 책무를 외면한 채 취업기관으로 전락한 배경일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지적에 동의하다 보면 대학은 큰 잘못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좌담에서 정운찬 전 총장은 “총장들이 사회적 경고음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저 경고음이 사회를 향하는 동시에 대학 내부를 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기업의 과도한 간섭도 걸림돌이지만, 외부 압력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대학 또한 대학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총장들이 강조했듯이 대학이 과연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무엇을 왜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취업에 목매다는 학생들의 ‘절규’를 듣고 있는지, 대학이 공공성을 추구하고 있는지 묻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저자와의 대화] '파농' 펴낸 이경원 연세대 교수

연세대 이경식 교수가 프랑스 식민지의 탈식민 이론가 파농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나라가 아직 탈식민화된 사회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머리말에서 지금 한국 상황을 파농이 살았던 당시와 비교하며 비판했다. 본문에서도 파농과 우리 시대의 연속성이 곳곳에 드러난다. 반세기 전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파농이 지금 탈식민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어떻게 연결된다고 보는가.

"한국이 진짜 탈식민화된 사회인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현실은 차치하고 정신적, 문화적으로도 미국, 유럽 사상에 너무 종속돼 있다. 세계화를 미국화, 서구화로 착각하거나, 식민화된 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과다 의존과 종속 상태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과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반세기 전 프랑스의 식민지 마르티니크도 그랬다. 원주민들은 종속되었다는 걸 몰랐다. 자신들은 ‘니그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짜 니그로는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들인 줄만 알았다. 착각이었다. 유럽 백인들에겐 그들도 한낱 ‘미개한’ 니그로일 뿐이었다. 원주민들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멸시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서구 중심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인 동시에 우리보다 검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에게 '하얀 가면'을 덧씌우는 가해자이기도 한 이중성을 '굴절된 형태의 인종주의', '희한한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는데….

"마르티니크의 원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을 동경하면서 '이만하면 상당히 서구화됐다', '백인화됐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서구의 백인들은 여전히 우리 문화를 열등하게 보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제3세계를 향해서는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갖는 게 우리들이다.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에 굉장한 차별과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게 대표적 사례다. 조국을 구하겠다고 뛰어든 군대에서 겪은 적나라한 인종차별을 계기로 혁명적 사상가로 거듭난 파농은 프랑스 식민지배에 맞선 투쟁 과정에서 수없이 좌절하지만 포기하지도 않았다. 현실이 녹록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식의 '체념적 긍정'으로 흐르지 않고, 차별과 억압에 맞서 아닌 건 아니라고 끝까지 주장하는 새로운 인본주의 사상의 추구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창의성은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만든다. Charles Mingus


거장들의 녹음현장 (181쪽)

Q. 당신에게 레코딩이란 무엇입니까?

A. 레코딩된 것에 바칠 수 있는 최고의 경의란, 레코딩의 과정과 레코드를 만든 사람의 자취, 혹은 자취가 모두 사라져버릴 것 같은 식으로 만들어진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고쳐 말하면, 레코드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레코딩은 공동작업이기 때문이죠. 그것은 스튜디오에서 누군가가 스위치를 누르며 '테이크 원'이라고 외치는 순간에 시작되는 길고 복잡한 일련의 작업인데, 그 가운데 최고의 창작품이 공장에서 프레스되어 팔려나갔을 때 최고조에 달합니다.

© 일원내시경교실 바른내시경연구소 이준행. EndoTODAY Endoscopy Learning Center. Lee Jun Ha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