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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 Random id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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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

지난 주 한 학술모임에서 제공된 도시락에 의한 집단 식중독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들 심한 설사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입원한 선생님은 없었다는데요...

학술모임에서 도시락을 제공하는 관행은 그만 둘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마침 김영란법도 발효되었으니 타이밍은 좋습니다. 도시락 대신 유통기한이 표시된 싸고 안전한 빵 정도를 제공하면 어떻겠습니까? '샤니 빵' 말입니다.^^ 맛있는 점심은 자기 집에서 먹고 학회에서는 샤니 빵 먹읍시다.


Facebook에 도시락 대신 샤니 빵을 먹자는 주장을 올렸더니 페친들께서 금방 comment를 주셨습니다. 하하하... 빵에 대한 저항감이 대단합니다. 하하하...


[2016-10-2. 경향신문] 코딩, 인공지능, 당파성

인공지능이라는 단어에는 탈인격화의 의도가 교묘하게 숨어 있다. 사람들은 인공지능 시스템에서 생긴 문제를 그것을 만든 개발자와 분리해 인공지능 자체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만일 다리가 무너지면 시공한 사람이나 관리 책임자에게 책임을 추궁하지만, 인공지능의 경우에는 인공지능 자체를 탓하곤 한다. 인공지능 그 자체로 완벽할 수 없는 것이라든지, 또는 버그 없는 프로그램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과오의 책임을 소프트웨어 그 자체에 돌린다. 즉 개발팀에서 고안한 알고리즘의 오류나 코딩상의 실수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잘못 학습해 만든 그 자체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그램 오류를 스스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벌레인 버그(bug)라고 미화해 부르는 것과 같은 문화적 맥락이다.


[2016-10-8. 곽금연 교수님 편지] 이런 편지 덕에 EndoTODAY를 계속할 힘이 생깁니다.

예, 선생님.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모의 땅 교육 오지에서 홀로이 고군분투하시는 선생님의 노고에 늘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2016-9-29. 사이언스 온] ‘논문생산성’ 문화, 기성연구자-젊은연구자에 다른 영향

주로 연구자의 성과는 논문 출판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연구자사회에선 일찌감치 논문 출판을 독려하거나 그 흐름을 꿰뚫어보려는 여러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게 “출판하라, 아니면 사라지리라(Publish, or Perish)”라는 말이 있다. 각고의 연구결과를 담아 논문으로 발표한 뒤에 그것이 연구자사회에서 많이 인용될수록 연구자는 높은 신용 또는 명성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할 때 신용 또는 명성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명성을 얻은 연구자는 명성의 효과로 더 자주 인용되고, 그렇지 못한 신진 연구자는 무명 탓에 덜 인용된다는 부익부 빈익빈의 “마태 효과”(Mattew Effect,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성경 마태복음 25장 29절)라는 말도 있다.

논문생산성이 클수록 논문이 많이 출판되어 좋은 논문도 많아지는 걸까? 최근 방대한 연구자 학술정보의 데이터베이스를 살펴 논문 출판 수와 인용 수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캐나다와 네덜란드 연구자는 과학저널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한 논문에서, 1980-2013년에 논문을 낸 2807만여 명 연구자의 학술 정보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연구 경력이 많은 연구자들에선 많이 출판할수록 많이 인용되는 논문의 출판비율도 높다는 패턴이 나타나며, 젊은 연구자들에선 이런 패턴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음은 논문의 초록 일부이다.

“1980-2013 기간에 걸친 연구자 28,078,476명의 방대한 데이터를 사용해서, 우리 논문은 평균적으로 개인 연구자가 출판한 논문 수가 많을수록 가장 많이 인용되는 그룹에 들어가는 논문의 비율이 더 커짐을 보여준다. 이런 연관성은 예전 연구자 집단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며, 근래 연구자 집단에서는 그 규모가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된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런 결과는 기성 연구자한테선 될수록 많은 논문을 출판하는 전략이 높은 인용지수 논문의 출판 비율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지 않았지만 그런 패턴이 젊은 학자들한테선 늘 관찰되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논문)

논문 출판 수와 인용 수의 패턴에 어떤 세대차가 있는 걸까? 논문을 보도한 <더 사이언티스트(The Scientist)>의 뉴스를 보면, 1980-1985년에 첫 논문을 냈던 나이 든 연구자 집단에서는 연구자가 출판한 논문 수가 늘수록 가장 많이 인용되는 상위 1% 논문의 출판비율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패턴은 의생물학 분야, 자연과학 분야, 법·예술·인문학 분야, 사회·행동과학 분야 가운데 의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논문을 다량 생산할수록 주목받는 논문의 출판비율도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독특한 점은, 이런 패턴이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활동에선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사이언티스트>의 보도를 보면, 2009-2013년 기간에 첫 논문을 낸 신진 연구자 그룹에선 30편 넘게 논문을 낸 경우에 상위 인용 논문의 출판비율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조사 결과에서, 논문의 질과 인용지수를 동일한 것으로 여길 수는 없다. 이런 해석보다는, <더 사이언티스트>가 보도했듯이 덜 알려진 신진 연구자가 낸 논문의 가치가 발견되고 인용되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리는 데 비해, 다른 연구자들이 자기 논문의 출판 기회를 높이려는 전략적인 이유 때문에 이미 널리 알려진 저명 저자의 논문을 지속적으로 인용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일종의 마태효과와 연관된 해석으로 여겨진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논문을 많이 내지 못하는 연구자들은 학계를 떠나고 연구역량을 인정받은 나이 든 연구자들이 학계에 남아 지속적으로 많은 논문을 내는 게 현실이기에, 그런 나이 든 연구자의 논문이 더 자주 인용되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논문 다량 생산의 전략은 경륜 있는 연구자들한테 훨씬 더 유효한 것일 수 있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다른 측면에서는 신진 연구자들한테 무작정 다량의 논문을 발표하기를 요구하는 문화는 연구자사회에 좋은 논문을 양산하는 데에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출판하라, 아니면 사라지리라” 식으로 논문 다량 생산을 독려하는 문화는 학계 전반에 좋지 않은 요인이겠지만, 무엇보다 젊은 연구자들한테 더 해로울 수 있다고 이번 논문의 저자는 <더 사이언티스트> 보도에서 지적했다.


[2016-10-12] 10월 11일 저녁 응원하던 팀(기아 타이거즈)이 9회 말에 무너졌습니다. 이제는 응원할 팀이 사라졌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감상하면 되겠지요.


태풍이 왔습니다. 이번 태풍에 부산 마린 씨티가 또 다시 잠겼습니다. 뉴스를 보니 한심하기 그지 없더군요. 방조제 높이가 3.4 미터는 되어야 하는데 민원때문에 1.2 미터만 쌓았다고 합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한심한 일이지요.

이번 부산 마린시티 침수 사고를 보면서 일본 후다이 마을 방조제가 생각났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당시 해안 마을이 모두 잠긴 상황에서 단 한 곳 후다이 마을만 방조제 덕분에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옮깁니다.

[2011-4-5. 중앙일보] “메이지 시대 15m 쓰나미” 촌장은 잊지 않았다.

일본의 한 어촌마을 촌장의 지혜와 고집이 지진해일(쓰나미)로부터 마을 주민 3000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 이와테(岩手)현에선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8000여 명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발생했지만, 북부 후다이(普代) 마을에선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쓰나미가 덮친 일본 동북 해안지역에서 사망자가 전혀 없는 마을은 이곳이 유일하다.

산리쿠(三陸) 해안가의 이 마을은 지난달 11일 약 14m 규모의 쓰나미가 덮쳤지만 높이 15.5m가 넘는 방조제와 수문 덕분에 마을 사람 전부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4일 보도했다. 방조제는 1967년, 수문은 84년 완공됐다. 각각 5800만 엔(약 7억5000만원)과 35억 엔(약 453억원)의 현 예산이 투입됐다. 방조제와 수문은 계획 당시 “너무 높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만리장성’으로 불리던 같은 현의 미야코(宮古)시 방조제 높이 10m를 크게 넘어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와무라 유키에(和村幸得) 촌장은 높이 15m 이상을 고집했다. 메이지(明治) 시대에 15m 높이의 쓰나미가 밀려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지역은 1896년과 1933년 두 차례의 쓰나미로 43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촌장은 “예산 낭비”라는 주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높이 15m 이상의 방조제와 수문 건설을 관철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와무라가 당시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고집했던 ‘높이 15m 이상의 방조제 건설 관철’이 옳았다는 것은 이번 쓰나미 때 입증됐다. 지난달 11일 거대한 쓰나미가 해초양식을 주업으로 하는 이 마을 앞의 항구시설을 삼키며 마을 쪽으로 몰려 왔다. 그러나 마을 앞에 설치된 높이 15.5m, 길이 155m의 방조제를 넘지는 못했다. 3일 현재 후다이 마을에서 사망자는 없고, 단 한 명이 방조제 밖에 있다 행방불명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10m의 방조제가 있는 미야코시는 쓰나미가 방조제를 넘어오는 바람에 수백 명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발생했다. 후카와타 히로시(深渡宏·70) 촌장은 “쓰나미 피해를 막으려는 고(故) 와무라 촌장의 열의가 주민들을 구했다”고 말했다.

미야코시의 아네키치(姉吉) 지역의 12가구(40명)도 선조들의 경고 덕분에 이번 쓰나미에서 목숨을 구했다. 1896년과 1933년 두 차례의 쓰나미로 주민 대부분이 사망한 이 지역은 당시 살아남은 주민들이 해발 60m 지점에 “여기보다 아래에는 집을 짓지 말라”는 내용의 비석을 세웠다. ‘높은 곳에 사는 것은 자손의 안락, 엄청난 재앙의 쓰나미를 생각하라’는 하이쿠(俳句·일본의 전통 시)도 새겨 넣었다. 후손들은 이 경고에 따라 비석보다 높은 고지대에만 집을 지었다. 11일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자 항구에 있던 주민들은 재빨리 집으로 대피했고, 거센 쓰나미는 비석 50m 아래에서 멈췄다. 기무라 다미시게(木村民茂·65) 자치회장은 “어릴 때부터 ‘비석의 가르침을 잊지 말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며 “조상의 교훈 덕분에 마을 주민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출처


[2016-10-21. 경향신문] 탈주마저 봉쇄된 나라의 이후

항의! 그렇다. 충성심을 복원하기 위해 그릇된 것을 시정해 달라는 요청의 이름인 항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묵살될 때 사람은 충성심을 놓아 버린다. 자신이 권력을 위임한 자로부터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것에 대해 그저 실망하고 화가 나서 항의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것과 소용이 없다 여겨지는 것이 고쳐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항의하는 것이다. 존중감은 바로 그 기대감을 조금이라도 충족했을 때 생겨난다. 이런 의미를 갖는 항의를 외면하고 억압했다면, 존중감은 물론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고 여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충성심을 유지할 도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2016-10-24. 경향신문] 새로움은 가치가 아니다.

첫애가 첫애일 수 있는 것은 둘째, 셋째처럼 다른 애들이 있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첫애는 외둥이가 되어버린다. 처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다음이 있어야 하는 게 사는 이치임에도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평가에서는 종종 이를 망각하는 제도가 설계되고 존속된다. 대표적인 것이 유사·중복연구 방지제도이다.

(...) 수십만 명의 연구자들이 1%도 안되는 예산절감 효과를 위해서 매년 새로운 과제를 만들어내야거나, 장기적 연구를 위해 매년 새로운 포장을 해야 한다면 이야말로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새로움 자체는 가치가 아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과학기술 연구가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낳고 있지만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노벨의 말대로 인류에게 혜택을 가져다주는 ‘좋은’ 연구일 것이다.


[딴지일보] 김재규의 항소이유보충서

© 일원내시경교실 바른내시경연구소 이준행. EndoTODAY Endoscopy Learning Center. Lee Jun Haeng.